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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호두과자의 아픔

 

지난 주말 <호두과자>가 네티즌들을 뜨겁게 달궜다. 맛대맛 대결 때문이 아니다. 상품 포장지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과 사진이 담겨 있어서였다. 26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 호두과자 업체가 상품의 포장지에 노 전 대통령을 희화한 내용을 담아 이를 고객에게 사은품으로 증정했다는 내용과 관련사진이 올라왔다.

게시된 사진의 포장지에는 노 전 대통령을 코알라와 합성한 ‘노알라’라는 사진, ‘고노무 호두과자’라는 상품명, ‘추락주의’ ‘중력의 맛’이라는 멘트가 인쇄되어 있었다. ‘고노무’는 일부 보수 성향 네티즌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줄여 부르는 인터넷용어다. ‘중력’과 ‘추락’은 이들 사이에서 노 전 대통령의 투신을 조롱할 때 사용된다. 이를 본 일부 네티즌들이 과도하고도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공분을 표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제품을 만든 해당 업체와 또 다른 네티즌들은 어떤 정치적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닌데 너무 과민한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때문에 논란은 더욱 거세지면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끊이지 않는 대통령 희화화

과거에도 대통령을 희화화(戱畵化)하거나 비하 또는 패러디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다. 주인공의 얼굴을 대통령의 얼굴로 바꾼 포스터와 UCC 제작에서부터 판사가 인터넷에 올린 ×짬뽕까지 대상도 전·현직을 가리질 않는다. 2009년 원주시정 홍보지 만평엔 현직 대통령을 욕하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원색적인 비난 문구도 실렸는가 하면, 올해 초엔 노 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스마트폰 게임 ‘바운지볼’까지 등장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젊은 팝 아티스트들이 대통령 생가를 찾아 예술을 앞세운 비하 퍼포먼스로 자신들을 띄우기도 해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다.

이처럼 대통령 비하 패러디는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장르와 내용도 다양하고 수위도 위험을 넘은 지 오래됐다. 표현하기조차 민망한 내용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아니면 말고의 막가파식 표현도 인터넷상 포털사이트에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인터넷은 뜨거워지고 국민들은 씁쓸해 한다.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주변에 자리 잡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국민생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이런 문화는 더욱 심화되어 왔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인터넷 대중화로 형성된 네티즌들이 정책을 합리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말초적 감정만 자극하는 황당한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요즘”이라며 “인터넷으로 무장한 대중의 정보력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창출 집단을 우습게 아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따라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국가원수로서 갖는 권위마저 위협(?)받는 게 요즘 현실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은 국가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권위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과 선출과정에서의 투명성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면서도 선거 과정에서부터 극명하게 갈린 민심은 결과가 나타난 후에도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면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헐뜯기 일쑤여서 그렇다. 상호 보완이 실종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나라 전체로 볼 때 불행한 일이다.

악의적 인신공격 삼가야

물론 이런 갈등이 지속되는 원인은, 모두를 아우르지 못하는 대통령 본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파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한곳에 집중된 권력으로 인해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의 권위와 존엄을 지키기 쉽지 않은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통령은 권한이 많은 만큼 국민의 비난과 질책도 집중적으로 받는다.

그렇더라도 국정운영과 정책의 부재를 가차 없이 질타할망정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사안을 만들어 공개적으로 비하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국민통합은커녕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우와 존경을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인신 공격형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성숙된 국민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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