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경기칼럼]<설국열차>와 <상어>

 

<설국열차>는 꽤 실망스러웠다. 현란한 홍보에 기대치가 한껏 부풀어 있어서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알고 갔으면 실망이 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열차 판 아니냐고 두덜거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속이 빤한 알레고리에 헛웃음을 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장쾌하게 설원을 달리는 기차 안팎의 액션과 스펙터클을 126분 동안 별 생각 없이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면 그만이었을 텐데.

시작은 그럴 듯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찾아온 새로운 빙하기, 윌포드 열차 한 대만큼만 살아남은 인류, 새로운 봉기를 획책하는 ‘꼬리칸’의 역동적인 풍경 등등. 딱 거기까지였다. 열차 안 감옥에서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광호)를 구해내는 장면, ‘일등칸’ 유치원 아이들이 윌포드를 찬양하는 유머러스한 신, 커티스가 털어놓는 ‘꼬리칸’의 비밀 정도를 빼면 별로 건질 게 없다. ‘닫힌 생태계’ 운운은 너무 식상해서 감동도 재미도 별로다. 봉준호 감독 작품 맞아?

마지막 장면에서 남궁민수의 딸(고아성)은 파괴된 열차를 벗어나 눈으로 뒤덮인 지구에 다시 발을 딛는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처럼 인류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는 암시다. 하지만 열차 한 대만 남기고 모든 게 얼어붙은 살풍경한 지구에서 이들이 생존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젠장, ‘폭주 기관차’의 외부는 정말 상상 불가의 영역인가?

봉준호 감독 작품 맞아?

드라마 <상어>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한이수(김남길)와 조해우(손예진)의 러브 라인을 축으로 요즘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아비와 할아비 세대의 진실을 추적해 들어가는 추리 구성이다. 시청률이 같은 시간 경쟁 드라마보다 낮긴 했으나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명암을 나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개인적으론 <뿌리 깊은 나무> 이래 가장 몰입해서 본 드라마다. 시청률이 최소 두 배 이상 높았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띄엄띄엄 봤어도, <상어>는 전편을 다 봤다.

조해우의 할아버지 조상국(이정길)은 사악한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천영보. 좌익이 득세했을 때는 그 앞장이 되어 독립운동가 조씨 집안을 몰살시키고, 미군이 들어오자 이번엔 그 앞잡이가 되어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주범이 된다. 조씨 집안의 장남으로 신분을 세탁한 그는 호텔업을 기반으로 한 그룹의 총수로 성공한다. 그는 부처님처럼 누구에게나 인자한 미소를 보이지만, 자신의 정체에 접근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살해하는 불면수심(佛面獸心)의 인간이다.

이 드라마도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구성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허점도 많다. 예컨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하도 얽히고설켜서 한 회 분 안에서도 반전이 일어난다. 검사 역할인 손예진이 미니스커트에 킬 힐을 신고 등장하기 일쑤다. 변방진(박원상) 형사는 극 중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의 수사를 맡는다. 그러나 이런 허점들에도 불구하고 해방공간에서 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이면을 끌어내어 시청자들 앞에 새롭게 제시하는 데는 성공한 작품이라고 판단된다.

회장님들의 전화 한통

그룹 회장으로서 전화 한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캐릭터는 이정길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추적자 THE CHASER>에서 박근형이 멋지게 연기한 바 있다. 회장님들은 대한민국의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다. 검찰총장에게 전화 한 통 걸어 수사를 막고,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전화 한 통 넣어 기사를 막는다. 전화 한 통으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날리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는 이제 정말 회장님들의 서재에서 누벼지고 있는 걸까?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2006년 CJ 세무조사 로비 대가로 수십만 달러 등을 받은 혐의로 엊그제 구속됐다. 당시에도 회장실 서재에서 전화 한통으로 역사가 이뤄졌을까? 전화 한 통이 국세청에만 갔을까? 어젯밤에 회장님들의 서재에서 날아간 전화 한 통은 누가 받았을까? 확실히 나는 드라마 <상어>가, 다 보고 나서 아무런 질문도 떠오르지 않은 영화 <설국열차>보다 훨씬 맘에 든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