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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닭의 색상을 가장 많이 복원해, 지난 3월 ‘2013년 경기도 최고’의 인물로 선정된 사람이 있다. 아내와 함께 파주 현인농원에서 1천여 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는 홍승갑(74) 대표가 바로 그다. 홍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이 ‘현인농원’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지정한 가축유전자원(재래닭) 관리농장으로, 조상들이 기르던 우리 고유의 재래닭을 복원·유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래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존·연구하는 농원이다. 30여년 동안 경기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재래닭의 다양한 색상을 복원하고 있는 홍 대표를 만나 재래닭을 복원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들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개들과 뒤편 닭장에서 들리는 수탉소리. 현인농원의 익숙한 전경이다. 우리나라에는 재래닭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재래닭의 품종이나 종류, 색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재래닭의 색상은 20여종. 그중 홍 대표가 복원한 색은 적(황)갈색, 흑색, 백색 등 모두 15종이다.
 

 

 


현인농원은 그동안 양계박람회, 파주 메뚜기 축제, 파주 장단콩 축제 등 다양한 축제와 전시회에 닭을 출품해 우리나라의 재래닭을 알렸다. 또한 흑색의 닭을 복원,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현인흑계’로 등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보통 10~20%의 확률로 다른 색의 닭이 나올 수 있는데, 농원은 그런 확률로 나온 소수의 닭을 정해 놓고 키우기를 반복하면서 그 색의 유전 확률을 70~80% 확률로 만드는 데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면 결국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는데 약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홍 대표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이면서 재래닭을 복원한다.

그런 그도, 사람들이 ‘재래닭’과 ‘토종닭’을 같은 말로 보는 것은 경계한다. ‘재래닭’은 순수 혈통의 우리 닭으로, 원래는 ‘토종닭’과 같은 말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우리 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들어온 지 오래된 닭들도 ‘토종닭’으로 불리는 등 ‘토종닭’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두 용어는 같지 않은 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이다. 1980년대 초 군사혁명 시기에 정부 차원에서 재래가축을 발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자 홍 대표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자가 없어져가는 것이, 혈통이 무너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우연한 계기로 ‘본초강목(本草綱目:중국 명나라 때 저술된 의서)’에 쓰인 닭의 우월성을 보고, 한 연구원에 의해 옛날 우리나라에서 길러졌던 닭들의 색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선조들이 키운 닭을 재현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였다. 홍 대표가 재래닭의 색상 복원을 마음먹게 된 것은.

그런 도중,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 초 조류독감이 발병, 언론에서 그 위험성을 보도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닭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홍 대표의 닭들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많은 닭들을 혼자서 피난시킬 방법도, 사람들의 불안감을 낮출 방법도 없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힘들게 복원하고 있는 닭을 잃을 수 없어 간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박제를 하던 중, 축산과학원 측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런 힘든 시기를 거쳤기 때문인지, 홍 대표는 닭장에서 한 번 나간 닭을 약 20일 동안 격리해서 키우는 등 닭을 관리하는 데 있어 철저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조류독감에 걸려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닭을 좋아하고 연구하는 그가 알리고 싶은 것은 닭 그 자체만이 아니라 순수한 닭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문화다.

처음에는 닭과 관련된 도구만을 모아 알리려다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문화를 이해함으로써 닭을 이해시키자는 생각에 민속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모은 300여 점의 민속품들과 50마리의 박제들이 한 공간에 놓여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작은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재래닭을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입이 없어서 손을 놓는 사람이 많은 와중에도 홍 대표는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이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비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재래닭 사육이 우리 혈통을 지켜냄과 동시에 가금산업을 굳건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색이 섞일까봐 1.5~2평 기준으로 10마리씩 닭을 사육하는 현인농원은, 토착균을 배양해 쌀겨 등을 발효시킨 후 사료와 먹이는 등 유기농법만을 고집한다. 그래서인지 농원의 닭들은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할 뿐만 아니라 닭을 사육하는 다른 농원과 달리 계사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농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닭을 보고 ‘우리 고향에도 이 닭이 있었는데…’ 하는 말을 할 때 ‘내가 제대로 복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는 홍 대표의 목표는 순수한 우리나라의 재래닭을 알리고 아직 복원하지 못한 색상의 닭들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종자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닭의 혈통을 유지하고 그 종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와 돼지는 품종이 등록돼 있는데 닭은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기에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닭의 품종 등록입니다. 또 수입이 없어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농가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는 그 사람들이 농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과감히 지원하여 그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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