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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DMZ 세계평화공원의 역설

 

경기도 버스를 타면 볼 수 있는 ‘G-Bus TV’에서는 DMZ를 비무장지대(DeMiliterized Zone)의 약자가 아니라 꿈을 만들어가는 곳(Dream Making Zone)으로 소개한다. 제법 재치가 엿보이는 조어다. 실제로 꿈이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다. 남과 북의 병력, 대포, 지뢰, 최첨단무기가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우리는 평소 이 역설을 잊고 산다. 그러다가 철책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발견되면 휴전선 250㎞에 전군 비상이 걸리는 곳, 그곳이 DMZ다.

종전 이후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생태의 보고(寶庫)라는 표현도 100% 진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군사적 이유 때문에 개발의 삽날이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무장지대 길짐승들이 우리 상상만큼 자유로운지는 의문이다. 사방에 깔린 지뢰를 피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동물적 감각 덕분일 게다.

평화가 없는 중무장지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은 연천군 백학면 고랑포리에 있다. 경순왕릉에서 능선 하나 넘으면 북한 땅이다. 경순왕릉으로 가는 길은 생태 보전이 비교적 잘 된 편이지만, 막상 능 주변은 그렇지 않다. 군인들이 시계(視界)를 확보한다는 이유로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놓아둘 여유가 없는 탓이다.

강원도 쪽 동부전선은 서부전선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이곳도 군사분계선 코앞까지 초소가 들어서 있다. 북도 마찬가지다. 날짐승이라면 몰라도 다른 생물들이 여기서도 자유롭기는 어려울 듯하다.

누구 말마따나 비무장지대는 지난 60년간 “거짓과 기만으로 평화가 유지돼온 땅”이다. DMZ 세계평화공원은 이 역설을 정직하게 직시한 연후에야 실현이 가능한 구상이다. 서해평화수역은 영토 포기이고, 세계평화공원은 평화 공고화라는 식의 이중 잣대부터 버려야 제대로 꿀 수 있는 꿈이기도 하다.

도라산 평화공원의 교훈

2008년 9월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에 도라산 평화공원이 문을 열었다. 경기도가 110억원을 들여 10만㎡ 규모로 조성한 공원이다. 이 공원이 가능했던 건 김대중 정권 이래 남북화해무드 속에서 도라산역이 세워진 덕이다. 도라산 평화공원은 도라산역이 없었더라면 일반인이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그런데 도라산 평화공원은 관광객이 크게 줄어 2012년 1월 이래 문을 닫은 상태다. 잘 가꾸어놓은 평화의 숲을 비롯해 100억원도 넘게 투자해 조성한 모든 시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2009년 겨울 관광객 월북 기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할 1사단이 버스 단체관광만 허용한 게 결정타였다고 한다.

DMZ 세계평화공원을 파주 철원 고성에 차례로 조성하든, 한꺼번에 만들든,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배워야 할 점이 참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남북 상호 협의와 협조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공원을 꾸미더라도 평화의 이름으로 돈만 쏟아 붓고 평화는 없는 역설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찾는 이 없는 일방적 ‘안보관광지’를 만들 바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세계평화공원은 그 규모만큼 지뢰를 걷어내고 병력과 군비를 줄일 때 명실상부한 비무장지대 평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원 조성 사업 자체가 군축의 의미를 지닌다. 북측이 여기에 적극 응해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북의 태도와 관계없이 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지뢰 제거하고, 병력 빼고, 무기 철수하는 일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하여 남쪽 비무장지대가 세계의 주목 속에 말 그대로 비무장 상태가 되면, 북을 향해 당당하게 비무장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은 이렇게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DMZ 세계평화공원을 상징적 말잔치로 우려먹는 경우다. 비무장이 아닌 비무장지대에 평화가 없는 평화공원을 만들겠노라고 또 하나의 기만과 거짓을 보태지는 말자. 마침 천운으로 개성공단 반전의 실마리가 잡혔다. 현 정부가 그 여세를 몰아 DMZ 세계평화공원의 첫걸음을 제대로 떼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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