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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헌책방

 

헌책방을 자주 찾는 오래된 수원 친구가 있다. 인문학을 전공한 교수도, 고서(古書)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아닌데 헌책방을 좋아한다. 친구는 읽을 만한 책을 찾는 쏠쏠한 재미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필히 헌책방에 들러 2시간 정도를 그곳에 진열된 책들과 대화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도 찾고 때론 읽기도 하며 맘에 들면 그 책을 구입, 친구들에게 권하고 선물도 한다. 임대업을 하는 친구의 서너평 정도 개인 사무실에 가면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들로 가득하다.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헌책방이 수원 팔달로 남문 근처 한두 곳으로 줄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즐거워하는, 그야말로 헌책방 마니아다. 친구가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물론 읽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책에 대한 욕심은 크고 구입비용은 만만치 않고, 그래서 처음엔 헌책방을 선택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비록 신간은 아닐지라도 쌓아 놓거나 진열된 책을 뒤지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설레임’이 헌책방을 찾는 이유로 바뀐 것이다. 때문에 조금은 느려 보이지만 좀 더 인간적이고 정겨운 세상을 추구하는 친구의 이 같은 심성이 동반된 헌책방 책 고르기 취미를 나는 좋아한다.

주위에서 사라지는 헌책방

요즘 우리 주위에서 헌책방 보기가 힘들다. 인천의 대표적 명물거리 중 하나였던 ‘배다리 헌책방거리’도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1940년 초부터 하나 둘씩 생겨난 배다리 헌책방들은 70년대 들어 넉넉지 않은 살림에 새 책을 구입하기 어려운 당시 사람들의 절대호응(?)에 힘입어 40곳이 넘게 번성했다. 배다리 헌책방 주인 중에는 우리나라 대표 여류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도 있었다. 1948년께 당시 주안염전 관리자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인천에 잠시 머물면서 배다리 책방거리에 헌책방을 운영한 것이다. 헌책방거리는 80년대까지 번창했으나 변하는 세월에 밀려 3~4곳만 남아있을 뿐이다.

북적임과 풍성함으로 가득했던 서울 을지로 6가 평화시장의 헌책방거리는 아예 사라졌다. 한창 전성기였을때는 200개에 달해 명실공히 우리나라 헌책방의 메카였던 동대문 청계상가 주변 헌책방 수도 요즘엔 10개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대부분 개발에 밀려 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옛 명성만 그리워하고 있다.

1950년 형성되기 시작,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부산의 보수동 책방거리도 그 세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지식공급소 역할을 했던 이곳은 많을 때는 70여 개 서점이 있었으나 현재 50개 남짓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전국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명물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뜻있는 지역민들의 걱정 이 크다. 그나마 최근 국내 유일의 헌책방거리인 보수동 골목을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까를 놓고. 책방 상인들, 부산지역 관계자들이 모여 골목의 앞날을 얘기하고 있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꿈과 미래가 공존하던 곳

현재 흉물처럼 방치된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보면 부산 보수동이 부럽다. 인천은 8월 초 2015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됐고 유네스코 책의 수도 제안서 안에 동구 배다리 살리기 프로그램도 포함시켰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특색 있는 책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아벨서점 등이 있어 그나마 명물로 유지되고 있으나 이것만 갖고는 골목이 살아나지 않는다. 많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합해지고 내외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춰질 때 가능하다.

헌책방은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꿈과 희망, 미래가 공존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난 세월 숱한 학자들, 그리고 애서가들과 함께 해왔다. 특히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들까지 줄을 서가며 헌책방을 드나들었고 남이 썼던 교과서와 참고서, 전문서적일지라도 흔쾌히 구입했다. 그리고 밑줄이 쳐지고 낯선 글씨체로 낙서가 되어있는 그 책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었다.

요즘 대부분 새것을 찾는 시대다. 때문에 헌것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책만큼은 새것과 헌것에 차이를 둘 수 없다. 담겨있는 내용의 진리로 보아 구시대의 유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첨단 디지털 시대가 점점 심화되면 될수록 유물이 더욱 빛날 수도 있다. 헌책방은 이런 책들의 안식처여서 사라짐이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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