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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아이들의 이름 불러주기’ 운동을

 

최근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어느 연수의 개강식에서 인사말을 한 적이 있다. 온종일 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대부분의 선생님이 손을 들 것으로 기대하면서 “매일 학급 아이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불러주는 선생님 계시나요?”라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100여명 중 손을 드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쑥스러워 손들지 못한 선생님도 있었겠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이 흔치 않음을 부인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꽃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냥 그 많은 꽃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학생을 전체가 아닌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주체와 주체로 만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사실 학생을 객체로 또는 전체 학생으로만 인식할 때가 많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학생 한명 한명을 주체로 존중한다는 의미이고, 사랑의 표현이며, 좋은 관계의 시작이다.

첫째,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학생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무수히 많은 학생들은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개체요 주체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이름이 불리기 전에는 정체불명의 학생에 지나지 않다가 이름이 불림으로써 비로소 선생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구체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학생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며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이름 불러주기는 사랑의 표현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선생님이 학생을 인정한다는 믿음의 표시이고, 관심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선생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학생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면 학생들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교사들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와 미래의 꿈을 키우는 꽃이 될 것이다.

셋째, 이름 불러주기는 좋은 관계의 시작이며, 선생님과 학생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잘 기억해 주고 불러주는 선생님 앞에서는 함부로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며, 선생님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그릇된 행동을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존중 받았을 때 그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고 그 사이에 좋은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노자 첫머리에 나오는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라는 말은 이름이 있어서 만물이 태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름이 없으면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서둘러 하는 일이 이름 짓기이다. 이때 부모님들은 무엇으로 지어야 사랑받는 이름이 될지 많이 고민하고 궁리한 끝에 뜻 있고, 부르기 쉬우며, 듣기 좋은 이름을 짓는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세상의 좋은 이름을 다 합친 것보다 자신의 이름 하나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 학교의 각 교실에서 공부 잘 하고 똑똑하여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발표를 해주는 아이들의 이름만 불리고, 하루에 한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면, 그 교실에서 과연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을까? 창의성과 인성이 자라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등하교길이나 학교생활이 이루어지는 교실, 복도, 운동장 등 곳곳에서 아이들과 마주칠 때면 “얘, 야, 너”라는 말 대신, “철수야!, 은영아!, 슬기야!”라고 이름을 불러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칭찬하고 격려해 주자. 아이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선생님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지며, 학습태도와 생활태도가 바르게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사회에서도 ‘아이들의 이름 불러주기’ 운동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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