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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대恨민국

 

한때 영어하면 성문, 수학하면 정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명문대 입학과 고성적을 보장하는 수험생들의 바이블로 불린 그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던 학창시절에도 성문이건 정석이건 출발은 바로 시리즈의 맨 앞에 오던 ‘기본’에서 시작했다. 이해가 얼마나 어렵던지 며칠 만에 내팽개치고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던 사람들도 부지기수였지만 중3, 고1부터 고3 끝나는 순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문과 정석 시리즈의 ‘기본’은 소위 ‘베스트프렌드’였다.

뜬금없는 기초와 기본 얘기는 연일 기세를 떨치는 폭염과 사상 최장의 열대야 속에 에어컨조차 제대로 켜지 못하는 이 여름을 보내는 내내 화두가 됐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전력경보 속에 장관이 직접 대국민담화로 절전을 호소하던 그 3일의 악몽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전력위기는 바로 기본이 문제였다.

조작된 시험성적서에 각종 부조리가 맞물린 ‘비리종합세트’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정전’의 악몽이라는 또 다른 단면은 아무리 참고 이해하려 해도 단단히 맺힌 분통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21세기 세계 15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그것도 통일한국을 대비해 북한 땅에도 우리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이 땅에서 벌써 몇 해째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이 우스운 광경이라니. 거기에 ‘내년엔 이런 일이 없도록’,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장관과 전력당국의 다짐은 얼마나 공허한 약속인지 국민들만 헛웃음으로 땀을 참고 나는 여름이다.

어디 그뿐인가. 연일 우리 서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허리띠 졸라매고 한푼 두푼 모아 은행대출까지 받아가며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사람들이 깡통주택의 속출에 집 사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세금이라도 아끼자며 전세대열에 뛰어든 게 벌써 수년째다. 주택보급률 100%를 넘긴 나라에서 내 집 갖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뛰어든 전세대란이 월세시장까지 초토화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이 여름이 참 더운 이유 중 하나다.

‘전쟁’으로 비화한 집세에, 허리 휘는 교육비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도 모자라 연일 쏟아지는 흉포한 성범죄 등 강력범죄의 향연에 ‘벼랑 끝 정쟁’의 여야 정치판까지 열불만 치솟게 만드는 이 계절에 박지성의 화려한 귀환과 류현진·추신수·박인비 등의 맹활약마저 없었으면 어떻게 버틸까.

열 받고 화나는 일은 그 정도면 된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들이 또 현실이라는 게 짜증난다. 아무리 돈벌이도 좋고, 틈새시장도 좋고, 세상이 승자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꼼수와 반칙의 난무는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거기에 뒷짐 진 공권력과 행정력까지 맞물린 꼴이라면 일상을 위기 속에서 지내는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커피숍 열풍에 교회와 사찰 할 것 없이 ‘무허가 불법 영업’에 나서고, 생명과 연관된 병원조차 수익 악화를 내세워 버젓이 법을 어기며 불법 배짱 영업을 하는데 정작 ‘민선 시장’ 하의 공무원들은 단속과 원상복구는커녕 막대한 표심에 오히려 눈감기 바쁘다.

일반음식점을 내세워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청소년 탈선까지 조장한다는 지적에도 막무가내 영업에 열을 올리는 ‘감성주점’과 ‘룸카페’가 넘쳐 나고, 국유지를 불법 점거해 계곡물을 끌어 모아 돈벌이에 급급한데도 구청은 ‘계도장’ 발급이면 할 일을 다 했다는 자세다.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 유지의 최후 보루이기는커녕 오히려 공범으로 전락해 자신의 흠집 감추기에만 몰두하는 최악의 행정이자 법집행 그 자체다.

공권력과 행정력이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무시하고 포기하는 지금, 우리는 누구를 믿고 의지할 것인가. ‘인문학 도시’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책이나 읽고 도서관이나 늘리면 된다는 무지스러운 단편적 이해가 아니더라도 ‘기초’와 ‘기본’에서 출발해 인간의,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향연이 가득 찬 도시는 그래도 아직 희망이라 할 만하다.

이제 10여일이 지나면 전 세계가 참여하고 주목하는 ‘생태교통축제’가 필연적 운명처럼 ‘개혁과 애민의 도시’로 성장해 온 ‘인문학본류 수원’에서 열린다. 축제의 성패는 물론 미래개척의 힘은 여전히 제대로 선 ‘기초’와 ‘기본’에서 나온다. 소박한 진리와 함께 다시 분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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