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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테러와 현악 4중주

 

이번 휴가의 시작과 끝은 뜻하지 않게 조금 특별해졌다. 중학생 딸아이를 교육적으로 배려한 휴가지는 천년고도 경주였다. 성수기에 바닥난 기차표 덕분에 마지못해 생색내듯 KTX 시네마 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들어오던 하행선, 상행선 기차 속 영화관에서 두 편의 영화를 만났다. ‘더 테러 라이브’와 ‘마지막 현악 4중주’, 영화 두 편은 공교롭게도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

하행선에서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뉴스 앵커 역을 맡은 하정우가 주인공이고, 한강 다리를 폭파하는 테러범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벌어지는 긴박감이 넘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저예산의 제작비로 알려져 있다. 개봉 5일 동안의 관람료 수익만으로도 벌써 손익분기점을 넘어 엄청난 흑자를 기대하고 있을 정도이다. 밀폐된 세트장에서 만들어진 테러 현장이 달리는 열차에서 묘한 긴박감을 더해 주었다. 2시간 남짓의 기차 여행은 영화의 화면과 함께 긴장하는 와중에 이미 끝나 있었다. 재난 영화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더욱 실감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굉음을 내쏟으며 폭파되는 장면과 터널 속의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의 소음은 절묘하게 서로 엉키고 있었다.

상행선에서의 영화 ‘마지막 현악 4중주’는 ‘더 테러 라이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안는다. 이 영화는 중년의 혼성 현악 4중주단 ‘푸가’의 이야기이다. 현악 4중주단이라는 음악적 소재를 다루고 있느니 만큼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함께 명배우의 명연기로 호평을 남기고 있었다. ‘푸가’는 결성한 지 25년째 수많은 공연을 함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구성원들 개개인에게는 미묘한 애정과 반복, 그리고 습관 같은 신뢰가 뒤섞여 있다. 이 네 명은 공연 무대에서는 서로 동료이면서 스승과 제자이고 부부이며 연인이기도 했다. 영화는 네 명 중에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크리스토퍼 워컨이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결국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25주년 기념공연에서 난도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을 연주하기로 결정한다. 그 마지막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날카롭게 드러나는 네 사람의 인간적 갈등 표현이 이 영화가 갖는 저력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를 내내 보면서 하정우의 앵커연기와 신인 감독에 대한 흥행 염려는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라이브로 테러를 중계한다는 설정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손쉽게 의구심이 풀렸다. 영화는 속도감 있는 단편적인 카메라 워킹과 감각적인 영상 전환으로 청중의 시선을 휘어잡는다. 93분의 생방송 테러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딴 짓을 못하게 하는 장치가 이곳저곳에 묻혀있다. 반면에 ‘마지막 현악 4중주’는 고별 공연을 준비하면서 각자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마침내 새로운 갈등으로 전이된다. 마치 삶은 화음이 아니라 불협화음에 더 가깝다는 것을 말해 주듯. 음악과 개인적인 삶을 절묘하게 연주하는 야론 질 버먼 감독은 이 작품의 편집에만 1년가량 걸렸다고 한다. 덕분에 소규모 예술영화로 진행되는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더 테러 라이브’는 영화 초반부터 재빠르게 재난의 상황에서 주인공과 관객은 긴장해소를 위해 습관처럼 물을 마시게 된다. ‘마지막 현악 4중주’는 더딘 듯 이어가면서도 깊게 스며드는 주인공들의 갈등에 빠져들면서 나도 모르게 물병을 찾게 된다. 생수병을 들이키며 더위를 잠시 한켠으로 비껴 놓은 두 영화는 모두 흥행작이다. 그리고 다양한 영화의 성공은 우리의 영화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기차 속 테러가 진압될 무렵 도착한 경주는 폭염이 테러를 일으키고 있었다. 8월 중에 경주의 최고 기온이 전국 최고의 기록을 다투는 날이기도 하였으니 날은 참으로 잘 잡았다. 무더위를 찾아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온 듯하다. 영화 두 편이 끝나면서 올해의 휴가는 아쉽게 끝나고 있었다. 더위는 아직도 여운이 강하다. 그래도 영화는 좀 더 강하다. 그걸 잠시라도 잊게 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인간은 더 강하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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