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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9월, 그리고 가을이 오면

 

9월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가을에 가 있다. 그리고 마음속엔 미래보다 과거의 추억이 더 많이 자리 잡는다. 어디론가 떠나고도 싶어진다. 옛날에 듣던 음악도 더욱 생각난다. 젊은 시절 선배로부터 들은 ‘가을 하면 브람스’라는 말 한마디가 멋있어 1970년대 음악감상실을 찾던 기억도 새롭다. 겉멋이 들어 당시에는 클래식의 감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음악 감상실에 들렀다. 가을을 앞두곤 더욱 잦았다, 르네상스. 종로1가에 위치한 그곳에서 의자에 파묻혀 브람스의 음악을 듣던 낭만이 생각난다. 그리고 모임이 있으면 으레 여기를 다녀왔노라 개선장군처럼 공개하고 브람스곡을 들어야 가을을 느끼느니, 교향곡 4번이 좋았느니, 감흥은 어땠느니, 어쭙잖은 품평으로 자랑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면서 웃음만 나온다. 아마 가을의 길목에서 낭만에 취해 부린 객기였노라 생각해도 역시 결론은 웃음이다. 하지만 추하지는 않다. 젊음이란 그래서 좋은가 보다. 지금은 그것도 추억이니 말이다.

그 시절, 가을 하면 해바라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가을만 되면 소담히 피는 계절 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입대를 얼마 앞둔 심란함도 많이 작용했다. 특히 당시 개봉한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의 스토리 내용이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전쟁 속 주인공 남녀의 인생과 사랑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착각하며 이상한(?) 고민도 했다. 영화 속 장면 중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게 있다. 소피아 로렌이 남편을 찾아 러시아로 향하는 열차 속에서 본 우크라이나의 들판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다. 화면 속에 가득했던 이 장면은 가을이 다가오면 빛바랜 추억으로 떠오르는 단골메뉴다. 가을이 오면 자주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객지인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가을이면 모든 게 서러운 마음에 흥얼거리던 곡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선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 형제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 우수에 젖었던 시절의 독백과도 같은 추억담이다.

젊은 시절, 추억을 재생시키기에는 이젠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신체의 출하(出荷) 연도인 나이로 보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감흥을 느끼기에도 감정은 이미 메말라 있다. 해바라기만 해도 그렇다. 지금 강원도 태백 구와우마을에 가면 영화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100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훌훌 털고 떠나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느덧 추억 속에 머무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은 들국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오는 길목, 우리네 산야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이 들국화다. 그러나 정작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들에 핀 국화가 들국화인데 그중에서도 구절초가 이맘때면 우릴 가장 많이 반긴다. 그래서 삶에 취해 사는 우리네는 구절초를 보며 가을임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 여행지에서 애틋하게 바라봤거나, 가슴 벅찬 느낌을 받았던 풍경들을 리바이벌해 보겠다는 생각도 고개를 치켜들지만 역시 추억으로 끝난다. 그리고 읊조린다. 시간에 따라 명멸하는 인간 삶의 유한함이라고.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가 있다.

세월의 가을이 아닌 인생의 가을을 노래한 것이어서 여름의 끝자락을 넘길 때마다 생각나는 시다.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열심히 살았는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기억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역시 후회가 앞선다. 추억 속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면 과거가 다시 그립다. 추석, 물가, 정치, 경제 등 여전히 우릴 괴롭히고 있어서다. 아직 덥다. 30도를 넘는 기온에 습도까지 높다. 하지만 밤에 부는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 벌써 가을이 오는 것인가’라는 감탄도 나온다. 올해도 다 가는구나. 추석 지나면 금방 10월인데 아무것도 해놓은 것은 없고 라는 푸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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