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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문화융성의 조건

 

올해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의 투자 재원은 1천78억여원이다. 그런데 내년에는 이 액수가 431억여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무려 60%가 넘는 641억여원이 깎여 나가는 것이다. 전례 없는 삭감 규모다. 더욱이 체육과 관광 분야 예산을 제하고 나면, 내년 경기도 문화계는 가뭄도 그런 가뭄이 없을 듯하다. 재정난에 봉착하면 문화 관련 예산부터 깎는 이상한 구시대 관행이 문화의 세기, 문화의 시대에도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딱하기만 하다.

경기도의 문화 인프라는 제법 잘 갖춰진 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구 100만명당 문화기반 통계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국 평균이 40개 수준인데 경기도는 31개 정도다. 무려 9개나 모자란다. 제주도 133개, 경남 45개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드웨어도 뒤지고, 예산도 절대액수가 깎여 나간다면 경기도 문화의 돌파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런 현실을 넘어 어떻게 문화의 융성을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토론회가 지난 6일 경기문화재단 다산홀에서 진행됐다. 문화융성위원회가 문화융성 실현과 지역문화 활성화 방안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한 전국 순회 토론회의 마지막 순서다. 문화융성위는 주지하다시피 박근혜 대통령 직속 문화 자문기구로 지난 7월 말 출범했다.

문화융성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더불어 박 대통령의 4대 국정기조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문화재정 2% 달성을 공약한 바 있고, 문화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지원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문화를 국정기조로까지 끌어올린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고, 문화예산 대폭 확대와 소통 및 지원 약속도 신선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현재의 평가가 아니라 5년 후의 평가다.

경기지역 토론회에서 두 명의 발제자와 네 명의 토론자가 제시한 다양한 진단과 제안은 그런 측면에서 현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날 토론회 내용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전환하고, 문화공동체의 토대를 다져야만 문화융성이 가능할 것이다.’ 문화재정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중앙정부가 마음대로 주무른다면 의미가 없다. 또한 그 성과가 지역 풀뿌리 수준까지 스며들어갈 때라야 진정한 문화융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정부의 문화정책이 지역의 문화융성이라는 결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현 단계에서 확고한 원칙을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토론회 첫 발제자였던 정광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제시한 세 가지 원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보충성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역 정책 수립과 집행은 지역 정부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중앙은 보충해 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게 보충성의 원칙이다. 지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 대신 중앙정부가 설칠 이유가 없다. 중앙정부는 보충적으로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둘째, 포괄성의 원칙이다. 지역에 대폭 권한을 이양하되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과 인력 등을 포괄적으로 충분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게 포괄성의 원칙이다. 셋째, 신뢰의 원칙이다. 지방정부의 정책 효과가 설령 더디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게 신뢰의 원칙이다.

이들 원칙은 사실 유럽연합(EU)-각 국가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3중 구조를 넘어 어떻게 명실상부한 유럽의 통합을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원칙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맥락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문화 부문이야말로 이들 원칙을 적용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역대 정권은 항상 집권 초기 새로운 문화정책을 표방했다. 새롭게 무슨 위원회를 만들고, 순회 지역문화 활성화 토론회를 열곤 했다. 그러나 지역의 불만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지역 중심 정책으로 전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5년 후엔 정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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