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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일왕저수지, 한국 땅? 일본 땅?

 

지명 얘기 또 해야겠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 땅에도 이름이 있다. 우리가 부르기 어렵고, 듣기에 거북하고, 뜻마저 좋지 않은 이름을 가졌으면 어떻게 할까? 대부분 법원의 개명 신청을 선택한다. 인지상정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인 창씨개명이 좋은 사례다. 광복과 함께 일본에 빼앗겼던 자신의 이름을 대부분 되찾았다. 한데 지명은 다르다. 생겨날 당시의 지형, 역사, 경제생활, 행정제도 등 유래를 담고 있어야 할 우리 지명에 아직도 일본식 지명이 버젓이 존재한다.

수원시 일왕(日旺)저수지가 좋은 사례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지방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황(凰), 왕(旺) 등 그들이 선호하는 한자로 바꿨다. 전자가 천황의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일본(日)의 왕(王)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왕저수지는 후자에 해당한다. 덩달아 저수지 인근의 삼거리 이름도 일왕이라는 이정표를 달고 있다. 현재 시청사 내 홍보관 지도에도 일왕저수지로 표기돼 있다.

본래 이름은 뭘까. 수원시와 수원문화원이 1999년 발간한 수원지명총람에는 언급이 없다. 단지 송죽동 안내지도에 저수지 이름으로 표시돼 있고, 송죽(松竹)의 한글이름인 솔대를 설명하는 내용에 ‘일왕저수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만 돼 있다. 100년이나 흐른 지명을 본래대로 돌려놓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원래 이름이나 유래를 알아야 개명을 하든지, 새 이름으로 짓든지 할 것 아닌가.

답은 시 홈페이지에 있다. 수원지명유래 코너에 일왕저수지를 올려놓았다. 이 저수지는 만석거, 북지, 조기정 방죽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저수지를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도 상세히 기록해 놨다. 가뭄이 극심하던 1794년에 저수지를 축조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공사에 들어가 같은 해 5월18일 공사를 마쳤다고 했다. 이미 고증이 끝난 셈이다.

수원과 연접한 의왕의 한자표기는 ‘義王’이다. 얼마 전만 해도 ‘儀旺’이었다. 일왕저수지의 ‘旺’과 같은 한자다. 의왕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광주부 의곡면(義谷面)과 왕륜면(王倫面)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수원군 의왕(儀旺)면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 합성지명이 본래 이름을 회복하는 데 무려 93년이나 걸렸다. 인왕산(仁王山)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 G20 정상회의 둘째 날 독일 메르켈 총리와 30여분간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독일 총리가 한·일 관계에 대해 묻자 박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를 방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나치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힌 메르켈 총리를 배워야한다”면서 아베 일본 총리를 겨냥했다.

맞다. 그런데도 일본은 매년 ‘다케시마의 날’이라는 행사를 치른다. 그것도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게 일본은 공분의 대상이다. 세대가 바뀌고, 이념이 달라도 언제나 그랬다. 한데 거기까지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엄중하고 단호한 대처와 함께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대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를 반복해 왔다.

박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에게 강조한 역사인식의 대상은 일본뿐만 아니다. 우리도 해당한다. 수원시사 편찬 작업이 막바지에 있다. 올 연말 출간 예정이란다. 아쉬운 것은, 지명총람 발간이 빠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원시는 시 홈페이지에서 그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부편Ⅰ 정거(亭渠)에는, ‘장안문을 나와 북쪽으로 5리쯤인 지하동구(芝荷洞口) 진목정(眞木亭) 아래에 개울을 뚝 잘라 방죽을 쌓고 만석거라 이름하였다’로 나와 있다.” 바로 그거다. 이참에 정조가 부국강병의 꿈을 담아 직접지은 ‘만석거’로 바로 잡는 것이다. 일본을 향해 역사에 눈을 떠야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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