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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모자람을 품어 안는 지혜의 계절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이 청명함이 한없이 고마운 것은 여름 날씨가 가혹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 커서인지 전혀 준비 없이 가을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음이 당황스러울 정도니 몸도 그러할 것이다. 여름 내내 사우나 더위 속에서 운동을 제대로 못한 탓에 허리만 굵어지고 신체균형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마음을 다잡고 무엇보다 지난 여름 무너진 몸을 가꿔볼 일이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운동할 곳이 널려 있다. 굳이 돈을 들여가며 피트니스 센터를 찾지 않아도 된다. 국토의 70%가 산인데다, 그 산이 일상 속에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오지의 산악 국가를 제외하곤 이런 선물을 가진 나라도 드물다. 내가 사는 곳만 하더라도, 차가 다니는 길을 통하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에서 바로 산에 오르는 길이 있다. 왕복 두어 시간 걸리는 그 산은 말 그대로 동네 주민들의 전용 운동장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종류의 혜택은 척박한 산악국가로서 그나마 우리가 자연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지자체가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산 곳곳의 등산로에 나무계단이 깔리고, 운동기구가 놓였으며, 휴식공간과 약수터까지 갖춰져 있다. 그 길을 비싼 아웃도어 의복으로 잘 차려 있은 사람들이 오른다. 한국은 이제 전 세계 아웃도어 용품 회사들의 경연장이 되었다. 옷 자랑 때문에 산에 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도 좋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이 점은 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엔 도시에서도 자전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도시는 물론이고 온 국토에 자전거길이 깔렸다. 6·25 뒤의 헐벗은 산을 푸른 숲으로 가꾸어 세계를 놀래켰듯이, 우리는 강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이크 로드’를 가장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 자전거가 일상화된 유럽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는 이렇게 무언가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최단 시간에 최고의 성과를 내는 신명의 민족이다. 그것이 전후의 가난을 이겨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으며, 이제 경제 강소국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이른 우리의 밑바탕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로 어딘가 좋은 것이 있으면 배우기에 주저함이 없고, 반드시 최고를 지향한다. 그래서인지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도 최초, 최고, 최대 등등이다.

하지만 그 일등지상주의가 낳는 부작용 또한 없지 않다. 좋은 것 뒤에는 어두운 그늘도 있는 법. 도시에 자전거 길을 내고, 대중교통 체계를 바꾼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도시가 파리다. 들라노에 시장이 시티벨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골목이 많은 오래 된 도시에서 이 제도는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좁은 도로에 난 자전거 길은 도로에 병목 현상을 가중시켰고, 밀리는 데 짜증이 난 시민들은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오염물질 총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자동차 사고율은 급증했다. 위험한 도로의 도시로 바뀐 것이다.

등산과 자전거라는, 도시인을 위한 건강과 레저의 잔치 자리에 초를 치려는 게 아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자주 잊는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선한 의도에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며, 아무리 좋은 것에도 모자람은 있다. 만일 지난 여름의 더위가 없었다면, 이 가을이 그토록 고맙고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또 이 가을도 머잖아 엄혹한 추위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어렵고 힘든 것도 함께 한다는 점,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계절과 풍요로운 명절을 맞아 우리가 새삼 새겨야 할 지혜일 것이다. 완벽함은 없다. 모자람을 끌어안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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