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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물타기’와 나쁜 민주주의

 

연휴 뒤끝 뉴스를 검색하니 몇몇 언론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부각시키려는 게 눈에 띈다. 달력 상 이맘때부터 지방선거가 의제로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추석 명절에도 가족끼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내년에 누가 우리 도지사, 우리 시장이 될지 잠깐씩은 얘기를 나눠봤을 듯하다. 누구는 공천이 어려울 거라는 둥, 누가 물밑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둥 소문도 무성하다.

하지만 올해 연휴 뒤끝에서 시도되는 지방선거 이슈화는 왠지 찜찜하다. 올해 내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물타기’ 여론공작정치의 일환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공작정치에 지방선거가 이용당하는 느낌이랄까? 나쁜 민주주의는 나쁜 지방자치를 낳고, 질 낮은 자치는 민주주의를 더욱 타락시킨다. 악순환이다.

되짚어보면 지난 설 명절 이후 추석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시원하게 밝혀진 것 없이 국면전환용 ‘물타기’만 줄곧 시도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지난 3월 여야가 국정원 국정조사에 어렵사리 합의하고, 진선미 의원이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 내부망에 게시되었던 ‘원장님 지시 말씀’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국정원의 잘잘못이 가려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4월 들어서는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일까지 있었다.

진실이 공작에 파묻힌 6개월

하지만 6월14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을 기소한 시점부터 상황은 본격적인 물 타기로 전환되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느닷없이 NLL 대화록을 전격 공개하고 나섰다. 문재인 의원이 대화록 열람을 제의하면서 상황은 더 꼬였다. 국정원 댓글사건이라는 본질이 아예 묻혀버리고 말았다. 국정조사조차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자, 중간 정리해 보자. 뭐가 밝혀졌는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전말이? NLL 포기 발언의 진실이? NLL 대화록의 행방이? 국정원 개혁의 방향이? 아무 것도 없다. 국민은 그저 휘둘렸을 뿐이다. 무려 6개월 넘도록.

이후 ‘이석기 사건’이 터졌다. ‘이석기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이 사건 역시 댓글 사건 물 타기와 무관하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번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문제가 불거졌다.

답답한 건 이들 사건의 진실 역시 뭐 하나 시원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이석기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 진실이 100% 밝혀질까? 채 총장의 DNA 검사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들 사건과 관련한 무책임한 추측과 소문만 무성하게 자라 국정원 댓글사건을 가려주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가?

왕조시대 정국 전환의 가장 좋은 소재는 역모다. 역모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도, 반대 파당의 조작된 발고(發告)만으로도 추국(推鞫)이 가능했다. 역모죄를 심문하는 과정에서는 혐의자가 물고를 당해도, 즉 죽어나가도 항변조차 할 수 없었다. 사색당파는 반대 파당을 역모로 몰기 위해 조작과 선동을 서슴지 않았다. 당파의 수뇌부에게 진실은 관심 밖 일이었다. 사극을 하도 봐서 국민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왕조시대 정치를 못 벗어나면

왕조시대의 정치 방식이 2013년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이렇게 기망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과잉 시대라는 식의 오만불손한 궤변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따지고 보면 국정원 댓글사건, NLL 포기 발언, NLL 회담록 실종, 이석기 사건, 채동욱 의혹은 다 별개의 사건이다. 어떤 것은 재고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설령 문제 삼는다 해도 그걸로 다른 걸 가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법으로 처리할 일은 법으로, 정치로 풀 일은 정치로, 제대로 가릴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못해내는 민주주의는 도금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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