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상]대왕님 여주에 오시다
[자치단상]대왕님 여주에 오시다
  • 경기신문
  • 승인 2013.09.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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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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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석 여주시장

바쁜 와중에 모처럼 시간이 나거나,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난 가끔 영월루에 오른다. 23일 여주가 시로 출범을 하는데 잠시 생각을 정리할 겸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오후에도 영월루를 찾았다. 영월루는 같은 이름의 영월루 공원 정상에 있는 누정(樓亭)이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현재의 영월루는 원래 18세기 말 여주 관아의 정문으로 있었는데 1925년 관아가 현대식 건물로 지어지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자칫 땔감으로 쓰일 뻔한 아슬아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 이렇게 여주를 상징하는 훌륭한 문화재로 남아 있으니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혜안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룻밤 사이 그 더웠던 여름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선선한 아침저녁으로 많은 이들이 영월루를 오른다. 어떤 이는 운동 삼아, 어떤 이는 나처럼 바쁘고 힘든 일상을 잠시 잊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만큼 영월루는 지역민들에게 도심 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더욱이 영월루 정상은 일 년 365일 똑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없다. 심지어 아침과 저녁의 모습도 같지 않으니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처럼 그저 보고만 있어도 발길이 저절로 이곳을 향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사색에 잠긴 나는 이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길고 모진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온 옛날 우리네 어머니 같은 남한강, 그 품속에 천년고찰 신륵사가 있고 여주가 있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생각. 여주는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요 군사적 요충지로 오래전부터 고대 역사서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골내근현, 황려현으로, 고려에 와서는 여흥군, 황려부로, 조선 초 여흥도호부로 불리다가 조선중기인 1469년 예종 원년에 마침내 현재의 여주로 명칭이 바뀌고 목(牧)으로 승격하게 된다. 이때 여주가 목으로 승격한 배경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광주의 대모산에 잠들어 계신 세종대왕님이 1469년 바로 그 해에 여주로 천장해 오셨던 것이다. 그로인해 여주가 목으로 발전하고 1472년에는 신륵사가 영릉의 원찰이 되면서 크게 중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군이 여주에 영면해 계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주로서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영릉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주를 떠올리니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으로 한글창제를 들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배운 세종대왕은 집현전에서 한글을 만들게 하고 해시계와 각종 과학발명품을 만든 천재적인 왕이었다. 그러나 오랜 공직생활과 지금은 11만 여주시민을 위해 일하는 시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며, 역사 속 ‘세종대왕’은 600년이 지나 현재를 사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재산으로 상속 · 매매되던 노비에게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그때 세종대왕께서는 관비의 출산휴가를 7일에서 100일로 늘려 주고 남편도 1개월을 줬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진실 되고 심오한 사랑이 없었다면 당대의 엄격한 신분제도를 봤을 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그분의 모든 업적이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한 시대의 발명품이 아닌, 후대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정신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영월루 정상에서 남한강을 등지면 여주 시내 전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기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고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일구어 갈 곳이다. 시야를 더 멀리 들어 시내의 끝자락을 따라가면 북성산 기슭이 보인다. 대왕께서 잠든 곳이다. 오늘 그분의 그런 사랑이 시간을 거슬러 붉게 물든 저녁노을에 실려 내 가슴에 전해 오는 느낌이다. 공원을 내려오는 발길이 오를 때와 다르게 가볍다. 544년 전인 1469년 대왕께서 처음 여주에 오신 그날처럼 23일도 대왕의 애민정신을 잇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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