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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치킨집, 지금은 혈투중

 

투계(鬪鷄)는 목숨 건 닭들의 싸움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역사도 깊다. 고대 인도·중국·페르시아를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성행했으며, 테미스토클레스(BC 524경~460) 시대에 그리스에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닭싸움은 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특히 경남 일대에서 활발히 전승되어 왔다. 2007년 진주에는 전국 최초 상설투계장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도 대규모 닭싸움이 행해지는데 잔인하고 도박성이 강하다.

중국 전한시대 사마천이 쓴 사기에 닭싸움의 거친 일면을 추론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계평자와 후소백이 닭싸움을 붙였다. 계씨는 닭의 날개에 겨자가루를 뿌렸고, 후씨는 발톱에 쇠갈고리를 끼웠다. 계씨가 화가 나서 후씨를 침범하니 후씨 역시 계씨에게 화를 냈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발톱에 끼운 날카로운 쇠갈고리는 현대 투계에서도 필수장비다. 살벌하기까지 하다.

3만6천개 넘어선 치킨집 버블

싸움방식도 여러 가지다. 그중 일명 ‘혈투’방식이 가장 잔인하다. 혈투는 많은 싸움닭을 한꺼번에 투계장에 집어넣고 1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닭들이 모조리 죽거나 불구가 될 때까지 싸움을 시키는 것이다.

요즘 동네마다 포화 상태를 이룬 우리나라 치킨집들의 생존경쟁이 꼭 이 모양새다. 퇴직 세대의 유일한 대안으로 치킨집이 자리매김하면서 전국적으로 3만6천개를 넘어섰다. 생계형 자영업종 중 휴대폰판매점(3만2천여개), 편의점(3만여개)을 제치고 최고에 올라선 것이다. 치킨집이 성행하면서 인구 1천명당 음식점 수도 12개로 덩달아 늘어 미국의 6배, 일본의 2배 이상에 이를 정도다.

최근 KB연구소가 낸 보고서는 동네 구석구석에 보이는 치킨집 주인들의 고민을 읽기에 충분하다. 보고서는 치킨집이 2002년 이후 해마다 9.5%나 증가하고 있으며 주거 및 근무지 1㎢ 내에 영업 중인 치킨 전문점은 평균 13개, 10년 전 7개에 비해 2배 늘었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치킨집은 매년 7천400개가 새로 개업할 정도로 창업 인기가 높지만, 반대로 5천개의 기존 치킨집이 폐업할 정도로 실패 확률도 높다. 공급 과잉 때문에 치킨집 주인 절반 정도가 가게 문을 연 지 3년 안에 폐업 절차를 밟고, 80%는 10년 안에 가게를 정리하는 게 현실이다. 이를 보며 새삼 ‘참!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밥은 먹고 살까’ 하는 의문이 교차된다.

열흘 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은 한국에서 많은 은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집 담보 대출을 받아 치킨집을 개업한 탓에 치킨집이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가계부채 위기의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과도하게 밀집된 치킨집이 사업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가게 주인들이 창업자금으로 빌린 대출금을 제때 못 갚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조금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치킨 집 버블’의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으며 동네마다 벌이는 치킨집들의 ‘혈투’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교묘히 창업부추기는 업체도 문제

이미 국내 자영업자의 위기는 수없이 제기돼온 문제지만 막상 창업 희망자들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이 “회사 때려치우고…”라며 울컥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치킨집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으나 지금은 현실이 됐다. 창업자 중 50대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2배나 늘었고, 20대도 증가세다. 퇴직 후 치킨집 창업에 뛰어든 50대, 취업난에 치킨집이라도 생각하는 20대가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업체들은 매출액이나 수익을 부풀리고, 가맹점수 및 성공사례 등을 사실과 다르게 거짓·과장 광고로 교묘히 창업을 부추기고 있다. 투계장의 도박사들처럼. 궁여지책으로 치킨집을 선택하는 창업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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