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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대한민국의 가난한 예술가

 

풍요로운 가을이 왔다지만 왜 이리 허한지 모르겠다. 가을 들판이 누렇게 변해가도, 나무마다 주렁주렁 과일이 달려 있는 뉴스 화면도 그저 남의 일이려니 싶다. 곳곳에서 축제의 화려한 불꽃이 터지지만 흥이 나질 않고, 메일 박스에 공연 보러 오라는 연락이 넘쳐도 남의 일처럼 심드렁하다. 대형 공연장의 핵심 간부로 일하는 지인과 며칠 전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젊은 기획자들에게는 선망의 자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신세 한탄이다. 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회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체에서 성공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젊은 날 자신의 선택이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보탠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기는 하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그야말로 ‘왔다가 그냥 가는’ 봉급 수준에 자녀들의 학자금이나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이 해가 갈수록 잦아진다고. 그렇지만 늘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는 내놓고 하지도 못한다. 상대적으로 그들의 경제적 상황은 소수의 소위 ‘대가’급 몇몇을 제외하면 훨씬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린 뒤의 현실은 좋아질 기미가 별로 없는 악순환의 연속.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2 문화예술인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따른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문화예술인이 66.5%에 이른다. 월평균 수입이 아예 없다고 답한 예술가도 무려 26.2%나 된다. 한편, 예술인들의 사회보장 현실을 보여주는 4대 보험 가입률도 건강보험 97.8%, 국민연금 66.7%, 산재보험 27.9%, 고용보험 30.5%로 나타나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학교도 요즘 분위기가 밝지 않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다. 예술과 취업의 모순된 관계가 애초부터 꼬여 있는 실타래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예술가의 꿈이 커질 대로 다 커진 상태에 도달하고 나서는 현실의 벽부터 절감해야 한다. 무기도 없이 전쟁터와 같은 취업전선에 나서야 되는 현실 앞에 학생도 교수도 그저 막막하다. 취업이 되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옆에서 제자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늘 안타깝기만 하다. 예술이 돈이 되고 인접 분야와 융합해 미래 첨단 산업의 핵심 콘텐츠로서 창조경제를 이끌어 간다는 이야기가 어느 동네에서 나온 멋진 그림인지 모르겠지만,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소리다.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여건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위에서는 기관 운영의 효율성과 성과 극대화를 외치니 돈은 더 벌고 제작비는 줄여야 한다. 그러니 출연 사례는 갈수록 현실과 격차가 벌어지고 대중적 인기만이 기획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기초예술 분야의 설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소모성 행사와 축제가 이 시대의 풍요로움과 희망을 기운차게 외치지만, 정작 예술인이나 이들과 함께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1980년 유네스코는 베오그라드에서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발표한 바 있다. “예술가에게 요청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예술가에게 존중과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제 권리를, 특히 예술가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소득과 사회보장과 관계되는 모든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라고 예술가의 지위를 정의하면서 예술가들이 사회로부터 예술 활동에 대한 존경 및 경제적 보호를 제공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제반 사항들을 기술해 놓았다.

이 권고문이 발표된 지 30년도 넘었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세월만 무심할 따름이다. 예술가들의 삶의 여건이 좋은 시대가 있었겠냐마는 문화융성을 말하기에 앞서 문화예술인들의 삶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문화융성의 시대는 문화예술인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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