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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준 경기도체조협회 고문

 

전국체육대회 12연패의 빛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체육 웅도’ 경기도.

경기도의 수부도시로 경기 체육을 이끌고 있는 ‘스포츠 메카’ 수원시가 육성하고 있는 다양한 스포츠 종목 중에서 특히 ‘체조’는 수원 체육 발전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

세류초, 영화초, 수원북중, 수원농생명과학고, 수원시청으로 이어지는 초-중-고-실업팀의 완벽한 연계육성 시스템과 5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갖춘 수원시 체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체조 메달리스트인 1988 서울올림픽 체조 도마 동메달의 주인공 박종훈(현 관동대 교수)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유옥렬(현 경희대 코치) 등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배출한 데 이어 지난해 전국체전과 소년체전 등 최근 개최된 국내종합대회에서도 매번 새로운 스타들이 나오며 체조 명문 도시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수원시 체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수원시 체조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바친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백광준(67) 경기도체조협회 고문이다.

1946년 2월 24일,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태생인 백 고문은 수원 신풍초를 졸업할 때까지 단지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어린이였다.

공부도 곧잘해 당시 수원, 화성, 오산 지역의 우등생들이 몰려 2:1의 높은 경쟁율을 기록했던 수원북중에 입학했을 만큼 학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체조를 접하게 된 것은 수원북중에 입학한 1958년 3월.

이북 태생으로 서울사대를 졸업한 체육교사 故 김시형 선생께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첫 체육시간에 진행한 체조수업이 그가 체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학급당 60여명으로 7학급이던 수원북중 신입생 중 정확한 동작으로 앞구르기를 하고 5단 뜀틀과 6단 뜀들을 연이어 넘었던 학생이 420여명의 전교생 중 백 고문이 유일했던 것.

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김시형 선생의 권유로 백 고문은 동기 2명과 함께 방과 후 체조 훈련을 진행하게 됐고, 수원북중 1기 멤버로서 ‘체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이 것이 현재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수원 기계체조의 효시가 됐다.

정식 창단되지 않았던 체조부 소속에다가 나무마룻바닥에서 운동을 해야했을 만큼 당시 훈련 환경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매우 열악했었지만 백 고문의 체조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지금에 비하면 마땅히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시절, 수원화성 장안문(북문) 주변에서 방앗간을 운영하시던 선친 덕에 다행히 동기들과 쌀을 나눠먹으며 미래 국가대표 체조 선수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백 고문이 2학년으로 진급하던 1959년에 수원북중 체조부는 신입생 3명이 가세하며 어느덧 정식 체조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아쉽게도 나머지 동기 2명은 학생 선수 생활을 중도에 그만뒀지만 김원주, 문현규, 이춘성 등 1년 터울 후배들이 가세한 데 이어 이듬해 인 1960년 수원북중 체조부가 정식으로 창단하게 됐다.

특히 1960년은 수원북중 체조부가 전국대회 도대표 선발전에서 지역 라이벌 평택중을 처음으로 꺾고 전국 무대에 나선 원년이다.

수원북중 졸업과 동시에 그는 수원농고(현 수원농생명과학고) 체조부 창단 멤버로 고교에 진학했고 3년간 동기, 후배들과 함께 수원농고 체조부의 태동기를 지냈다.

수원농고 체조부 1기 멤버로 고교 3년 생활을 마친 백 고문이 한양대학교 체조부에 입학하던 1964년.

김원주, 문현규, 신영균, 심인섭 등 그의 후배들은 수원농고의 첫 전국대회 종합우승을 일궈내며 동생격인 수원북중과 함께 본격적으로 수원 체조의 중흥을 이끌게 된다.

백 고문은 “비록 내가 재학 중에 전국대회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후배들이 전국 대회를 제패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감격스러웠다”며 “당시 전국대회 우승을 시점으로 수원북중-수원농고가 전국 최강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전했다.

한양대 재학시절 각종 전국대회에서 입상 성적을 남기며 선수로서 황금기를 보냈던 그는 한양대를 졸업한 뒤 서울 한양사대부고 체육교사로 교편을 잡으며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비록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경기도 체조를 위한 마음은 결코 식지 않았다.

서울시 소속 고교 교사였던 탓에 경기도 체조를 위한 출장에 나설 때마다 출장비는 고사하고 매번 눈칫밥을 먹어야했던 신세였지만 그는 경기도 체조를 사랑하는 애향심으로 매번 사비를 들여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지난 1978년 수원농고 동문회 내 소모임인 ‘광교55회’(수원북중-수원농고의 주소지인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55번지에서 유래) 소속으로 역시 동문인 故 심재덕 수원시장, 故 최종현 SK그룹(당시 선경그룹) 회장 등의 후원을 받아 둥문과 함께 십시일반으로 1억5천만원 규모의 기부금을 모아 수원농고 체육관 건립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2년 세워진 수원농고 체육관은 이후 박종훈, 유옥렬, 한윤수(현 경북대 교수) 등 1980~1990년대 한국 기계체조 간판스타를 길러낸 체조 성지가 됐다.

또 지난 2000년대 초반, 경기도 체조가 무관심 속에 마땅한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동료, 후배 등 경기도 체조인과 함께 경기도체조발전위원회(가칭)라는 모임을 결성,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각 학교 지도자들에게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1992년부터 시작된 경기도체조협회 부회장, 상근부회장 등의 체육 행정 업무를 거쳐 도체조협회 고문으로서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지금 중학생 선수들의 기술 수준이 40~50여년 전 내가 선수생활을 할때의 대학생 선수보다 뛰어날 정도로 한국 체조가 발전한 것에 대해 감개가 무량하다”며 “또 수원시 뿐만 아니라 평택시, 고양시, 용인시 등 도내 다양한 시·군에 체조 꿈나무를 길러낼 초·중교 체조부가 탄생하게 된 것도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매 대회때마다 체조경기장을 찾아 후배를 격려하고 있는 백 고문의 소망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시상대에 경기도 소속 선수들이 가장 높은 곳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2년 후 브라질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 설 후배들을 직접 응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매달 적금을 들고 있는 그는 끝으로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후배들에게 선배이자 체조 원로로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자’하는 신념으로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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