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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1895년 고종 32년 ‘여주목’에서 ‘여주군’으로 강등된 이후 118년 만에 군의 꼬리표를 떼고 지난 9월 23일 시로 승격했다. 이는 경기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28번째 시로 승격된 것이다. 여주시의 새로운 슬로건은 ‘남한강의 비상’으로 결정됐다. 상징마크는 남한강과 여주의 넓은 평원에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김춘석 여주시장은 시 출범을 기념하며 “‘제2의 남한강 기적’을 이룰 그날까지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매진하자”며 “지난 3년여 간의 결실을 드디어 맺게 되고 도·농복합 여주시 원년을 맞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초대 여주시장’이라는 영예를 안은 그는 “여주를 시로 승격시키기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힘들게 진행했던 일들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11만 여주시민들은 발전과 성장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이라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었다.

 


지난해 시 승격을 위한 주민여론조사에서 나온 60%대 초반의 저조한 찬성률을 안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얻어낸 커다란 성과여서 그럴 만도 했다.

“여주는 2008년 시 승격을 추진하다 정부의 지방행정체제 통합정책으로 좌절을 겪었으니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번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 호의적인 분위기로 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여주의 미래를 그린 청사진을 들고 꾸준히 주민들을 설득해 큰일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시 승격을 이뤄낸 김 시장은 “이제는 그동안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났던 주민 갈등을 봉합하고 시민 화합을 통해 여주시의 기초를 다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주의 시 승격은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544년 전인 1469년 여흥 도호부에서 오늘날의 시에 해당하는 여주목으로 승격됐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여주군으로, 그것도 충주부의 속군으로 전락한 지 118년 만에 제 위상을 찾은 것이지요. 제자리를 찾은 만큼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이 많기만 합니다.”

김 시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 시 승격 달성이라는 외적인 목표에 매진했다면, 이제부터는 여주시에 바라는 각계각층 주민들의 바람을 정책으로 펼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현재 수립중인 ‘여주시 비전 2025’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복지 향상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해 나가겠다”며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주민들이 ‘그때 시로 바뀌기를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며 환한 웃음으로 미래를 약속했다.

 

 

 

 



“남한강의 기적과 함께 새롭게 태어난 여주시, 밝은 미래 만들 것”

- 118년 만에 여주목 영광을 되찾아 시로 승격한 소감은.

여주를 시로 승격시키겠다는 다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준비했다. 11만 여주시민들의 희망과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 여주의 시 승격과 함께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여주 시민에게 시 승격이 되는 지난달 23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승격과 함께 주민행정 서비스 향상을 위해 밀착형 행정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또 행정구역은 가남면을 읍으로 승격 전환하고, 여주읍은 여흥동·중앙동·오학동 등 3개 동으로 개청했다. 행정조직 개편은 주민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주시 700여 공직자들은 더 편하고 친절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시 승격 추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들은.

시 승격 3년 후부터 농어촌 특례입학이 사라져 여주지역 내 학부모 단체들의 반발과 세금, 의료보험료만 올라갈 뿐 아무런 혜택도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진정성 있는 대화와 설득을 진행했다.

우선 교사, 학부모, 교육 관계자 등 1천500명의 의견수렴과 교육 관련 우수사례를 비교·분석, 여주군 교육발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시 승격을 여주 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만들자고 설득하고 협조를 구했다.

또 1년여 동안 10개 읍·면을 돌며 주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수십 차례 갖고 시 승격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대를 조금씩 함께 쌓았다.

- 여주시의 미래 모습은.

여주는 이중 삼중의 각종 개발제한규제들로 대규모 개발 사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런 규제들이 가까운 미래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현재로서는 어렵다. 시 승격을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할 기회를 잡아 환경파괴를 피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보존된 도시로 여주를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친환경 여주 쌀, 고구마 등 농·특산물은 서울 등지의 대도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일등 농산물이다. 도시 속의 잘사는 농촌을 만들고 싶다. 여주의 이미지를 도시적이고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지역경제도 튼튼히 하고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산업단지 조성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남여주·동여주 고속도로 나들목 인근에 굴뚝 없는 첨단산업단지 조성으로 미래 신도시의 변모를 계획하고 있다. 여주시가 경기도에서 도시로서는 후발 주자이지만 모범적인 ‘도·농 복합도시’로서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전국의 표준이 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시 승격에 따른 지난 군정성과를 평가한다면.

11만 군민의 여망을 담아 도·농복합 여주시 승격을 위해 ‘남한강에서 날아올라 더 넓은 세계로’라는 슬로건 아래 왕실진상답 생산단지 조성, 박물관 건립, 도서관 개관 등과 농업경영인 전국대회, 쌀·고구마 축제·도자기축제 등 축제, 문화·관광이 꽃 피는 여주 건설에 전력을 다해 조기집행 평가 최우수, 경기도 평가 특별상, 자치단체 예산 효율화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군민과 함께 목표했던 현안 과제와 발전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해 왔다. 앞으로 다소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해 추진해 나가겠다.

- 여주시 승격에 따른 역사적 의미는.

삼국시대에는 골내근현·황려현으로, 고려에 와서는 여흥군·황려부로, 조선 초에는 여흥도호부로 불리다가 조선 중기인 1469년 예종 원년에 마침내 현재의 여주로 명칭이 바뀌고 목(牧)으로 승격하게 된다.

여주가 목으로 승격한 배경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광주의 대모산에 잠들어 계신 세종대왕님이 1469년 바로 그 해에 여주로 천장해 오셨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여주가 목으로 발전하고 1472년에는 신륵사가 영릉의 원찰이 되면서 크게 중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성군이 여주에 영면해 계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주로서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영릉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주를 떠올리니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으로 한글창제를 들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배운 세종대왕은 집현전에서 한글을 만들게 하고 해시계와 각종 과학발명품을 만든 천재적인 왕이었다. 그러나 오랜 공직생활과 지금 11만 여주시민을 위해 일하는 시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며, 역사 속 ‘세종대왕’은 600년이 지나 현재를 사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재산으로 상속·매매되던 노비에게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그때 세종대왕께서는 관비의 출산휴가를 7일에서 100일로 늘려 주고 남편에게도 1개월을 줬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진실 되고 심오한 사랑이 없었다면 당대의 엄격한 신분제도로 봤을 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그분의 모든 업적이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한 시대의 발명품이 아닌, 후대에 길이 남을 위대한 정신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영월루 정상에서 남한강을 등지면 여주시내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기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고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일구어 갈 곳이다. 시야를 더 멀리 들어 시내의 끝자락을 따라가면 북성산 기슭이 보인다. 대왕께서 잠든 곳이다. 오늘 그분의 그런 사랑이 시간을 거슬러 붉게 물든 저녁노을에 실려 내 가슴에 전해 오는 느낌이다. 공원을 내려오는 발길이 오를 때와 다르게 가볍다. 544년 전인 1469년 대왕께서 처음 여주에 오신 그날처럼 지난달 23일도 대왕의 애민정신을 잇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주시가 천년의 침묵을 깨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고, 여러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때 모두가 화합하고 결속해 더 넓은 안목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경기도 제일의 문화 관광도시, 힘차게 뻗어가는 여주를 건설해 나갈 수 있도록 시민 모두 행복 여주를 만들어 가는 데 적극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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