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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치]신뢰와 정치를 위한 길

 

어느 날 나라의 위기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백성들이 크게 놀라 경계에 나섰지만, 사실은 술에 취한 신하의 실수로 인한 해프닝이었다. 왕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겼지만, 그로부터 몇 달 뒤 진짜 위험이 닥쳐 북을 울렸을 때 백성 중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비자에 나오는 초나라 여왕의 일화로,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동서양의 고전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뭘까? 신뢰의 중요성이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질문을 받았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기 진영으로부터는 존경받는 인물이 많은데, 왜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드문 것일까? 불신의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진영의 논리만 앞세우면서 상대방의 합리적인 주장조차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폄하하는 구조에서는 신뢰가 꽃 피울 수 없다. 심지어는 자기 진영으로부터 박수를 받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막말을 경쟁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전투구의 싸움질 정치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불러왔다.

여기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산물로 필자가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함께 주도해 18대 국회 막바지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다수당이 힘을 앞세워 날치기를 강행하고, 소수당이 몸싸움으로 막는 극한 대립의 악순환을 끝장내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새누리당 남경필·김세연 의원 등이 중심이 된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과 민주당 원혜영·김성곤 의원 등이 중심이 된‘민주적 국회운영 모임’ 소속 의원들이 2년여에 걸쳐 외국의 사례 등을 연구해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정 관행으로 이뤄지는 것들을 제도화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칙은 존중돼야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에는 51 대 49의 표결이 이뤄지면서 극단적으로 51%를 위한 민주주의만 실현되고 나머지 49% 국민의 의사는 묵살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설 의회를 두고 법안과 의안을 심의·표결하는 과정에서 국민 다수의 의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상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예산과 민생법안을 다루는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이 시점에서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SNS 등의 발달로 인해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비밀이 없으면 매력도 없는 법. 투명한 사회일수록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양극화 심화, 일자리 부족, 실업과 비정규직, 저출산·고령화, OECD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등 숱한 난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빙 승부가 예상되었던 지난 대선에서 양쪽 진영은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를 모두 실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국가부채를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국민에게 정직하게 사실을 고백하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재원조달의 가능성과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대화와 토론이 이뤄졌어야 한다.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는 차치하고라도, 필요한 재원과 관련해서 이명박정부 감세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기업들이 미국의 슈퍼 리치들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유보율은 평균 1천442%, 잉여금은 405조원에 달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은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며 청원까지 벌였다. 지금이라도 대기업들이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며 자임하고 나선다면, 이것이 우리사회의 갈등을 완화시키고 사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정치가 할 일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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