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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잔인한 달 10월

 

엊그제 모처럼 막내 동생 내외와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중 동생은 자연스레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졸업을 앞둔 큰아들 얘기를 꺼냈다. 물론 취업걱정이었다.

지난 일요일인 6일 취업시험을 치렀고 그 시험 이외에도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제출해 놓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털어놓은 걱정이었다. 그중에는 아들이 받는 중압감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 잘 될 것이라는 위안의 말로 화답했지만, 취업이 ‘고시’나 다름없는 요즘이어서 동생 내외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매우 안쓰러웠다.

이렇듯 대졸 구직자들에게는 10월이 기회의 달이기도 하지만 좌절과 고통의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10월을 잔인한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소한 취업희망자들과 가족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올해도 10월 초 어김없이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모집했다. 2월과 8월 졸업생, 그리고 내년 2월 졸업예정자, 거기에 취업재수생까지 수십만명이 시험을 치렀다. 삼성그룹에 13만여명, 현대차그룹에 10만여명이 몰렸다. 덕분에 이들을 포함 4대 재벌그룹의 입사경쟁률도 평균 8.3대1로 지난해 6.1대1보다 크게 높아졌다. 삼성은 SSAT 시험을 보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최대 숫자다. 경쟁률도 18대1을 기록했다. 응시생이 많다 보니 시험장도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를 비롯해 미국 뉴욕·LA, 캐나다 토론토 등 국내외에 걸쳐 84곳이나 됐다. 대학가에서는 이를 신종 ‘기업고시’라 부르기도 한다.

고시라는 이름의 대기업 입사시험

요즘 대졸 취업희망자들이 이 같은 삼성·현대차·LG·SK·포스코 등 몇몇 대기업 ‘고시’에 목숨을 거는 것은 보수와 직장 안정성 측면에서 다른 기업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들어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찾고 발전시킬지에 대한 미래 비전보다 현재의 사회적 평판을 훨씬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대기업 직원이 아니면 맞선 보기도 힘들다는 최근 세태도 한몫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좋은 학점과 다양한 스펙 쌓기, 취업시험 준비에 거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바친다. 그들에게는 인문학 탐구와 책읽기에 빠져 들어야 하고, 소양과 창의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조언 따위는 귀담아 들을 여지가 없다.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도 생계형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만원이다. 먼 미래를 위한 공부와 학문은 없고 각종 고시와 취업시험 준비만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러하자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정신적 황폐함, 절망감, 불안감, 세상을 바라보는 불신감 등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날로 팽배해가고 있다.

취업시험에 합격한 젊은이들은 그래도 다행이다. 이러한 정신적 중압감에서 어느 정도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고시’를 준비했던 취업희망자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득이하게 떠밀려(?)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에 들어가면 또다시 정신적 갈등을 겪으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일쑤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재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들을 가리켜 소위 ‘파랑새증후근’이라는 표현도 쓴다. 모두가 양질의 일자리가 대기업에만 편중된 우리나라의 병폐적 경제구조의 산물이다.

편중된 양질의 일자리가 빚어낸 병폐

하지만 이마저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은 자괴감과 상실감 속에 빠지며 자신에 맞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기도 한다. 부모에 기대어 생활하는 ‘캥거루족’이니, 타인과의 공동체 생활을 부정하는 ‘나홀로족’이니 하는 비생산적 사회계층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캥거루족은 자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댄 채 살아가는 이들을 뜻한다. 어미 주머니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기 캥거루의 습성을 빗댄 신조어다.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아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식들이 크게 늘면서 세대 간의 갈등도 늘고 있다. 어려운 취업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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