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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가을 이사, 문화로 읽기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지난 여름부터 노래를 부르듯이 되뇌었던 말이다. 지금 사는 집은 35년이나 족히 된 아파트로 재건축 예정지이다. 거의 모든 배관마다 녹이 슬어 온수에는 녹물이 섞여 나오고, 난방도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늘 겨울이었으니, 그 겨울은 너무도 길고 또 깊었다. 온 식구가 집안에서 내복에 파카를 입고 덧신을 신으면서 다소 과장을 하면, 입김을 불며(?) 살았다. 다시는 그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칼럼이 게재되는 날에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철의 전형적인 이사를 선택한 셈이다. 이사하는 날짜가 정해지니 이삿짐 정리가 시작되었다. 그 일은 결국 버려야 할 것과 가지고 갈 것의 구분에 대한 판단의 연속이었다. 쓰지 않는 가전제품은 재활용 업체에 연락해서 치우고, 이사를 다니면서 풀어놓지 못한 채 따라다니던 짐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선조들의 지혜로운 이사

조선시대 우리의 조상들은 좋은 조건을 갖춘 집을 찾아 이사를 하였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무릇 살 터를 잡는 때에는 첫째 ‘지리’가 좋아야 하고 다음에 ‘생리’, 즉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방법이 좋아야 한다. 다음에 ‘인심’이 좋아야 하고,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은 아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현대적 ‘지리’는 교통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그 중에서도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과 버스가 잘 연계되어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사는 곳의 근처에 시장이나 마트가 있어 생활이 편해야 ‘생리’라고 여길 수 있는 셈이다.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는 음식점도 그 조건에 부합한다. 가까이에 크고 작은 종합병원이 있으면 더욱 쓸만하다. 지금의 ‘인심’이 좋은 지역은 주변의 교육시설이나 문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어울려 생활하는 곳이라 비유할 수 있다. 넓은 운동장을 가진 학교 주변이라면 더욱 좋다. ‘아름다운 산과 물’은 자연과 더불어 산책로나 공원을 끼고 있으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행복의 주요한 조건으로 이어진다.

‘이사 문화’의 어제와 오늘

대도시에 살다보면 이사를 해야 할 여러 이유가 생기게 마련이다.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돌이켜보면 한국 전통적인 생활문화 중에 이사풍속만큼 다양한 것도 드물다. 이사는 길한 날을 택일하여 가는데, 지금도 손 없는 날을 찾아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오늘날 현대의 첨단사회에서 손 없는 날의 이사비용은 30% 내외를 더 받는 것은 ‘풍속의 프리미엄’이다. 주말이면서 손 없는 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사한 뒤에는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도 훈훈하다. 여전히 이것은 ‘이사떡’을 돌리는 인정으로 남아 있다.

이사풍속의 배경사상은 주로 풍수지리사상에 기반을 둔다. <택리지>에 ‘산 좋고 물 좋고 토질이 좋으며, 햇빛이 잘 들며 음습하지 않은 곳에 집을 지으면 재산이 늘고 자손 대대로 번성할 터’라 하였다. 풍수사상은 살아있는 대지에 포함되어 있는 땅의 ‘기’에 의해서 인생의 길흉과 복을 점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신앙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양택’이라 하여 중요시했다. 안타깝게도 후대에 잘못 인식되어서 ‘음택’에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즉 묏자리에만 편중되어 후손발복의 기복사상을 바탕으로 지금의 전통학문 조차 균형을 잃고 음택에 집중한다. 여기서 ‘발복’은, 즉 운이 틔어 복이 다가옴을 말한다.

이사풍속의 주류를 이루는 사상도 한마디로 ‘기복사상’이다. 어쨌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여 잘사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발코니에 쌓아 놓았던 짐 정리는 치우고 치워도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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