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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봉’ 이야기

 

김선달의 애칭인 봉이는 시장의 닭을 봉(鳳)이라 속여 고을 수령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이득을 취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과정 또한 비슷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닌 것을 갖고 마치 내 것인 양 행세하며 이익을 취하는 부류를 빗대 봉이 김선달식 장사라 부르기도 한다. 요즘은 원가나 힘을 들이지 않고 부당이득을 취할 때도 곧잘 인용된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이런 김선달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난다. 인도네시아에는 대도시 내 큰 도로를 제외하고 차량이 많은 도로의 ‘U-턴’ 지역이나 동네 좁은 길 진입로, 또는 좌우회전이 교차되는 지역 등에는 으레 젊은 사람이 한두 명씩 꼭 서있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좁은 길 중간에서 차량들이 맞부딪히는 경우를 막아주거나 원활하게 지나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그리고 수고비를 받는다. 하지만 수고비라기보다는 일종의 통행세 성격이 크다. 돈을 받는 사람들이 그 동네 토박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량 안내보다는 자신들의 지역을 지나가니 돈을 내라는 성격이 짙다. 이러한 사례는 농촌의 소로(小路)나 시골의 소도시인 경우는 더욱 심하다. 질이 나쁜 집단은 거의 지역 폭력배 수준일 때도 있다. 혼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몇 명이 같이 움직이는데 운전자가 돈을 줄 준비를 안 하고 있으면 차 앞을 막아서고 보내주지를 않는다든지, 돈을 주지 않으면 차를 두드리거나, 발로 차기도 하고 뾰족한 것으로 차를 긁기도 한다.

현지 운전자들은 이들을 ‘빠오가’(Pak Ogah)라 부른다. 한번 건네는 통행료는 100루피아(한화 10원) 정도. 비록 저렴하지만 지역 경계를 지날 때마다 이런 통행료를 바쳐야 하니 운행거리에 따라 소요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인도네시아 운전자들은 무법자인 이들을 또 다른 말로 100루피아 경찰(Polisi Cepek)이라 부르기도 한다.

요즘 도로를 운전하면서 설치된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인도네시아 생각이 나며 화(禍)가 치민다. 거두는 통행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산정기준이 애매해 마치 주머니를 털리는 기분이 들어서다. 경인고속도로가 아마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1968년에 개통한 경인고속도로의 통행료는 30년 이상 징수할 수 없다는 현행 유료도로법대로라면 이미 15년 전에 통행료를 폐지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줄기차게 통행료를 받고 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이 같은 봉이 김선달식 장사 덕분(?)에 지난해까지 순수익도 5천831억원이나 났다. 법적인 근거도 없이 운전자들의 지갑을 통째로 털어낸 결과다.

민자고속도로는 더 가관이다. 이들 민자고속도로는 정부로부터 손실보전 명목으로 연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지원 받으면서도 통행료를 낮추는 데는 인색함으로 일관해서다. 2000년에 개통한 인천공항고속도로만 보더라도 소요된 사업비를 금융권의 선순위채 금리가 9%인 초 고금리 자금을 사용하고 있다. 2007년 개통한 서울외곽고속도로의 경우도 금융권 선순위채 금리 7% 초반의 자금을 쓰고 있다. 최근 시중 대출금리가 4%대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이들 민자고속도로는 2배 이상 비싼 금융자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운영비가 많이 들어가니 통행료를 올려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운전자를 ‘봉’으로 여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효율적 운영방식만 고쳐도 민자고속도로의 통행료를 10% 이상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업자들의 회계운영까지 간섭할 순 없다’는 논리 하에 10년 넘게 방치하며, 운전자들에게는 통행료 폭탄을 안기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포함 전국엔 이런 도로가 10곳에 이른다.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허가 난 인도네시아식 ‘빠오가’에 시달리는 운전자들, 그야말로 도로의 ‘봉’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은 정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할 수만 없는 일 아닌가. 사실이 알려진 이상 이젠 통행료거부 운동이라도 벌여 ‘봉’들의 힘을 보여줄 때도 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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