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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 분야에 ‘킬러 콘텐츠’라는 말이 은근슬쩍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년 전 학술발표회 자리에서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자신을 탓하며 어림짐작으로 넘어갔다.

비교 경쟁에서 대단한 우위를 점할 때 ‘죽이는데∼’ 하는 표현에서 연동된 용어로, 등장하자마자 경쟁제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지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컫는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을 문화·콘텐츠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주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국제적인 스타 등 문화상품으로서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가리킨다. 영국의 작가 조안 롤링이 쓴 해리포터는 전 세계에서 4억여권이 팔렸다고 한다. 영화, 캐릭터 산업에서는 이 킬러 콘텐츠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미국의 할리우드와 디즈니, 일본의 온라인 게임과 망가(漫畵), 프랑스의 와인과 향수 등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국가 이미지 브랜드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성공한 이후 주인공의 이름을 딴 ‘프로도 경제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영화의 제작팀이 촬영지인 뉴질랜드에서 2억5천만 달러를 쓰고 1만5천여명의 직접 고용창출 효과를 냈을 뿐 아니라, 촬영지 테마파크 사업으로 뉴질랜드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그야말로 대박상품이다.

새롭게 출범한 우리 정부도 이러한 사례들을 모델 삼아 게임, 음악, 애니·캐릭터, 영화, 뮤지컬 등 5대 글로벌 킬러 콘텐츠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공연예술분야에서 사용하는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표현은 조금 다른 면이 읽혀진다. ‘국가대표 공연’이라는 뜻인데 자존심과 콧대가 느껴진다. 2006년 국립극장에서 시작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명품 공연’ 제작의 의지가 담긴 작품들은, 국립극단의 ‘태’, ‘화선 김홍도’,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국립창극단의 ‘청’,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 등이다.

지난 9일 막을 내린 국립극장의 최신작 ‘단테의 신곡’은 국가브랜드 공연에 담아낸 그 동안의 의지와 열정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이 창작 초연 작품에 이례적으로 전회·전석 매진이라는 반응으로 답했다. 우리나라의 공연 제작 여건을 감안할 때 22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겠지만, 7년간의 꾸준한 의지와 땀방울의 결실로 느껴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 공연 제작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의 축제에서도 킬러 콘텐츠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현대 지역사회에서 개최되는 축제는 예술축제, 마을 굿과 놀이, 지역의 정체성 강화, 관광과 여가 향유 등의 목적으로 구분되는데,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의하면 국고 지원을 받는 758개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지역 축제가 2천429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1년 내내 축제 중인 셈이다. 지역 축제가 지역의 사회·문화·역사적 특징들이 스며든 지역민들의 놀이이자 활력인 동시에 지역의 홍보 효과까지 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의 정체성이나 지역문화 발전과는 아무 상관없는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의 도구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무분별한 양적 팽창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그저 그런 축제 내용에 킬러 콘텐츠를 만들자는 자성의 움직임이 반가울 따름이다.

‘킬러 콘텐츠’라는 말에 산업적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기는 하지만, 의미와 적용 사례가 ‘완성도 높은, 차별적 경쟁 우위’라는 점에서 공연과 축제분야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용어이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노력 없이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인데, 지역의 공연예술과 축제 분야에서 킬러 콘텐츠 제작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진지하고 차분하게 확대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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