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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어젯밤 집사람이 심한 기침을 하며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감기기운에 시름시름 하더니 본격적인 몸앓이를 시작하는 것 같아 매우 안쓰러웠다. 그리고 출근 전 병원에 가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집사람의 대답은 ‘아니요’였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안쓰럽던 집사람에 대한 관심도 나에게로 바뀌었다. 기침소리로 잠을 설치는 것이 꼭 불이익을 당하는 것 같아 ‘사서 고생이냐’는 목소리 톤도 높아졌다. 그러면서 하루저녁 기침소리에 이처럼 짜증이 나니 만약 저 사람이 병들어 쓰러지거나 아파 눕는다면 그 많은 나날들을…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로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을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보다. 필자처럼 가족의 중심인 부부 관계에서조차 그러하니 말이다.

일상의 어제 일을 생각하며 오래전에 읽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속에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난다. 한 가지는 간디이야기다.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함께 가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한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짝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나에게 닥친 불행과 불이익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때론 반응을 넘어 크게 화를 내거나 깊은 시름에 잠긴다. 그러다 자신의 불행과 불이익으로 어쩌다 다른 사람에게 작은 이익이라도 갔을 거라고 생각하면 시름과 화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자신의 불이익으로 작은 이익을 받은 사람이 그 이익으로 큰 기쁨을 얻었거나 희망을 가졌다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의 생각은 찾기가 어렵다. 또 내게 닥친 불행과 불이익만 생각할 뿐 나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망각하기 일쑤다. 그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간디의 이야기는 이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또 하나는 책의 제목이 된 이야기다. 이민 2세대 어린이가 있었다. 그의 가정은 먹고 남은 음식을 전부 항아리에 넣어 수프로 끓여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나 식구들은 그것을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 아들인 친구를 초대하게 됐다. 이런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린이는 어머님에게 그날만은 먹고 남은 음식으로 수프를 끓이지 말아달라고 주문하지만 친구가 온 날 수프 역시 어제 먹다 남은 닭고기와 빵조각을 넣은 것이었다. 어린이는 부끄러워했지만 친구는 맛있게 먹었다. 수십년 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 친구의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으로 만든 수프를 먹게 된다. 그러면서 친구가 고백한다. “내가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너의 집에서 먹었던 닭고기 수프였어. 거기엔 가족의 애정과 마음이 담겨있었어”라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인간사회를 건전하게 이끄는 이 같은 윤활유가 넘쳐나고 그것이 동반된 삶이라면 세상은 매우 풍요로워질 것이다. 인정이 메마르고 작은 행복조차 찾기가 힘든 세상일수록 더욱 그렇다.

요즘 세상이 어지럽다. 모두가 공존해야 한다는 명제를 잃어버린 것 같이 사회 계층 간 갈등이 심하다. 정치권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고, 최근에는 정부와 종교계 간의 갈등도 첨예하다. 곧 한해가 저문다. 이제 그만하고 멈추어 서서 나에게 닥친 손해나 불이익을 던져버리고 더 이어 있을 기쁨과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래서 따뜻한 세상 이야기로 닭고기 수프를 끓이고 이를 나누어 먹는 저무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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