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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황혼, 그 아름다움

 

삼국사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서기 248년 고구려 동천왕이 죽었을 때 백성이 왕의 죽음을 슬퍼했고 신하들 가운데 왕을 따라 죽어 함께 묻히려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중천왕(동천왕의 아들)이 이를 금지했다. 하지만 장사하는 날 무덤에 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가 많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할 때 스스로 따라 죽는 것을 순장(殉葬)이라고 한다. 고구려 백성들이 순장을 선택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터다. 죽음이 현실의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을 이어간다는 믿음이 가장 앞에 놓일 것이다. 죽음을 종결의 의미가 아닌 연속성을 지니는 품목으로 간주한 것이겠다. 하여, 자신이 흠모한 왕을 다른 세계에 가서도 똑같이 모셔야겠다는 내면의 의지가 죽음을 넘어서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영웅은 죽어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가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425)의 저서 ‘역사(Historia)’에는 또 이런 기록이 있다.

발칸반도 동남부에 사는 트라키아 부족의 경우, 남편이 죽으면 여러 아내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아내를 뽑아 가장 가까운 친족의 손에 의해 남편의 묘소 위에서 살해되어 남편과 함께 매장했다. 이때 다른 아내들은 자신이 뽑히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데, 그녀들은 뽑혀 죽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치욕이 없다고 여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망인(未亡人)도 같은 의미다. 남편을 따라 차마 죽지 못한 여자.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함께 죽어야 한다는 묘한 심리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열녀(烈女)가 되는 세상이 있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순장이나 열녀를 강조한다면,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로 치부된다.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겠다.

공중파 방송 가운데 아침 인기 프로그램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내 삶의 두 번째 짝을 찾아서’라는 내용으로 공개 재혼 코너를 하고 있다. 인기가 참 많은가 보다. 신청이 폭주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참가자들도 당당히 사별이거나 이혼이거나 이유를 밝히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까닭을 소상히 털어놓는다. 게다가 자식들이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아 부모들의 삶을 새롭게 꾸민다니 순장주의자들이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겠다. 세태는 그렇게 변하고 있다. 순애보(殉愛譜)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시절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100세 시대로 불리는 만큼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50대 이상 연령층의 재혼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단다. 통계청 자료인데, 우리나라의 지난해 여성 재혼 건수는 56만5천건, 남성은 51만1천건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재혼 당시 평균연령은 남성이 46.6세, 여성이 42.3세로, 30년 전이던 1982년보다 남성은 7.7세, 여성은 8.6세 증가했다. 지난해 재혼 남성의 경우 40대(36.2%)와 50대(25.8%)가 주류였고 여성은 30대(35.7%)와 40대(34.1%)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이상 ‘황혼 재혼’이 급증한 모습이어서 ‘인생은 황혼부터’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재혼 여성 가운데 50대 이상 비중은 1982년 6.0%에서 지난해 21.8%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재혼 남성 가운데 50대 이상 비중도 15.5%에서 35.6%로 확대됐다. 게다가 재혼한 부부의 연령 차이는 남자가 6세 이상 연상인 부부의 비율이 1982년에는 재혼부부의 52.6%였으나 지난해에는 동갑 및 연령차 5세 이하가 64.7%로 비중이 가장 컸다. 격세지감이다.

한 발짝 더나가 고령층의 황혼이혼이 증가세를 보였다니, 곪았다 터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남자 60대 이상, 여자 50대 이상의 이혼 건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건 2004년 이후라고 한다. 일본에서 황혼이혼이 급증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바람이 고스란히 한반도에 불었던 탓도 있으리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신이 선택한 것을 인간이 갈라놓지 못하옵나이다’ 등의 맹세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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