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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 유머, 신이 준 최고의 선물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 해군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일본군의 가미가제 전술이었다. 전력상 열세인 일본군이 막강 화력의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비행기에 폭탄과 함께 최소한의 연료만 싣고서 날아가 미국 군함을 들이받는 것이었다. 비행기의 자살 공격은 성공할 경우 배의 안전에 치명적이었던 데다 목숨을 하찮게 버리는 그 행위 자체가 미군이 보기에는 무섭도록 끔찍한 것이었다. 실제로 200척이 넘는 많은 전함이 피해를 입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군들의 대응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두려워했지만 그들은 바로 적절한 대응책을 찾았다. 전함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기관실을 보호하기 위해 물리적인 조치를 취한 일이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을 이길 정신적인 대응책 또한 필요했다. 그들은 배의 갑판에 커다란 화살표를 바다 방향으로 그려 넣고는, 거기에다 ‘가미가제 히어’라고 적었다. 즉 바다 방향으로 날아가서, 배 말고 바다 위에 떨어지라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서양의 합리주의 사고를 가진 미군이 그 주문의 효력을 믿은 것은 아니다. 단지 죽음과 마주한 긴장과 공포의 순간을 유머로서 견디고자 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이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일본이 신흥강국이긴 했지만 국력이나 무력의 차원에서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일본의 해군사령관으로 진주만 공습을 이끈 야마모토 이소로쿠조차 전쟁 발발 전에는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할 정도였다. 야마모토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주미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며 미국의 엄청난 저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일,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에 도취된 군국주의자들은 그만한 식견이 없었다. 결국 미치광이 전쟁광들의 주장에 밀려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야마모토는 승리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태평양전쟁을 지휘했지만, 1943년 전황 시찰에 나섰다가 요격을 당해 최후를 맞는다. 전쟁 설계자인 그의 죽음 이후 일본은 가미가제와 옥쇄 외에 별다른 저항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런 역사적 사실 속에서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미국식 유머가 결국 일본의 터무니없는 진지함을 이긴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유머는 건국 200년 만에 지구의 최강국이 된 미국사의 성공 체험과 거기서 우러난 낙관주의의 산물이다. 죽음 앞에서 누군들 두렵지 않겠는가? 일본은 천황이라는 가상의 가치를 내세워 죽음을 독려한 반면, 일본의 그 진지함에 맞서서 미국은 가벼운 유머로 그것을 해체하고 희화화한 것이다. 결국 가벼움이 진지함을 이겼다. 일본은 무력으로도 졌고, 정신적 가치에서도 무참히 패배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이 너무 진지하다.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도, 노동현장에서 파업하는 것도,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도, 하다못해 시댁과 처가와의 관계에서도 진지하다 못해 죽기 살기로 전쟁을 치를 기세다. 심지어 박수 좀 건성으로 쳤다고 목숨이 오간다. 그런데 그 일이 과연 그렇게 진지해야할 만한 것인가?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야 자기들 밥줄이 걸려 있으니 그렇다 치자.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왜 그런 일에 휘둘려 싸움판의 진지함이 되어야 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어차피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우리들의 일상은 한줌의 행복을 기다리는 권태와 고통의 시간이다. 그 생을 위로할 것이라곤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미소와 배려뿐이다. 한민족 역사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부유하고 풍요로운 지금 그 사소한 게 없어서 모두가 불행하다면, 우리의 진지함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존을 위해 지나치게 진지해야만 했던 우리 역사의 곡절과 내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잠시의 여유를, 일상의 소중함을 돌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의 대사처럼 ‘울면서 태어난 우리’에게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유머의 가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여유와 배려와 미소가 바로 유머에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 글이 유머 없이 너무 진지한 건 아닐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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