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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소통(疏通), 그 시작은 나부터다

 

수업시간에 사오정이 손을 들더니 말했다. “선생님 칠판 글씨가 안 보이는데요.” 그러자 선생님이 “이게 안 보여? 너 눈이 몇이니?”라고 물었다. 사오정이 대답했다. “제 눈은 둘인데요.”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그게 아니고 눈이 얼마냐고?” 사오정이 벌떡 일어났다. “예? 제 눈은 안 파는데요-.”

오래전 유행한 사오정 유머시리즈 중 하나지만 소통이란 이처럼 어렵다. 그래서 실제로도 이 같은 일은 드물지 않고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상황만 다를 뿐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전화는 고사하고 멀쩡하게 마주 보고 나눈 얘기조차 잘못 알아듣는 일도 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대의 의중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대로 듣거나 말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일 때가 더 많아서다. 그래서 불통사회인 요즘 사오정 유머를 그냥 웃어넘기기엔 왠지 씁쓸함이 앞선다.

진정한 소통은 부모 자식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 사이에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때로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싶어 가슴을 칠 정도다. 그러니 생판 모르는 남남끼리, 그것도 나이, 성별, 처지, 가치관이 모두 다른 사람끼리 상대의 말을 전하려는 의미 그대로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건 간단하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소통(疏通)이란 낱말은 라틴어에서 나왔다. 나누다(communicare)가 어원이다. 본래는 천상의 신이 인간들에게 덕성을 나누어준다는 의미였다. 동양사상에선 소통이란 말에는 몇 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대종언어연구소에 따르면 예기(禮記) 등에선 ‘통달함’ ‘물길이 통함’을 뜻했고, 송나라 범중엄이 쓴 <종간여류부(從諫如流賦)>에서는 ‘뜻을 전하여 통함’의 의미였다고 한다. 이중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소통의 의미는 ‘뜻을 전하여 통함’이 가장 가깝다고 한다.

소통의 방법과 범위는 다양하다. 갓난아이는 울음으로 기본 욕구를 표현하기도 한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나무뿌리끼리 서로 소통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고 일정 범위를 두고 자신의 뿌리를 뻗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소통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어야 하듯이 소통에도 나무와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끊임없는 만남과 부딪침을 통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만남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자신과의 만남이고, 둘째는 타인과의 만남이다.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된다. 또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의 생각을 듣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일 좋은 소통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일일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그것 중 하나다. 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는 경지의 소통이어서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하는 염화시중(拈華示衆)도 있다. 불교용어지만 소통의 으뜸으로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소통들 역시 세속에서는 바라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아 있다. 모두가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행동이라 그런 것이라고 치부도 해보지만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고 하듯 소통의 주체인 본인은 불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소통을 외치며 상대방이 불통이라 비난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소통 채널은 굳게 닫아 놓은 채 어쭙잖게 소통을 논한다. 나라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조직 내 소통이 어떻고 등등.

올해는 남 탓 하는 자신의 불통부터 깨뜨리도록 하자. 소통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가정에서부터 소통을 이루자. 부부간, 자식간. 그곳에서 소통이 없으면 사회통합을 위한 우리의 소망과 꿈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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