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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결제 60일과 6개월의 차이

 

옛날 골목상점 유리창에 흔히 붙어 있던 ‘외상사절’이라는 문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시에는 돈이 없어도 일단 물건을 가져가고 외상장부에다 적어 놓고 뒤에 월급날 갚곤 했다. 돈이 필요하면서도 차마 외상값을 갚아 달라 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거나, 제 날짜에 갚지 못해 눈치를 보던 훈훈한 마음씨도 있었다. 지금은 동네 슈퍼마켓이나 골목상점에서 외상거래가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골목상점도 거래행태가 바뀌었는데, 그보다 규모가 크고 거래질서가 잡힌 기업 간 거래에 아직도 외상거래가 많이 남아 있다. 흔히 말하는 어음결제라는 방식으로 30일, 60일, 100일 등 결제 기일이 들쭉날쭉하다.

지난주 경기도 어느 시에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중에 매출이 2천억원을 조금 넘는 기술력이 우수한 중견기업 사장의 말씀이, “거래하는 대기업의 납품대금 결제는 15일 현금결제로 바뀌어 크게 좋아졌다. 그런데 매출액 중 1천억원은 그밖에 기업과 거래하는데, 상당수는 아직도 납품하고 6개월 후에 대금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협력기업에 60일 결제를 해주고 있다. 이것 좀 개선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

6개월에 대금을 받아서 60일에 결제를 해준다. 아마 이러한 여건에서 제대로 기업을 경영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중견기업 대표는 어려웠던 옛 시절을 생각해서 60일 이내 납품대금 결제를 꼭 지키고 있다. 이 회사와 거래하는 중소협력업체 대표들이 입을 모아 중견기업 사장에게 고맙고 감사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골목상점에서 외상거래도 없어진 지 오래 되었는데, 왜 기업 간 거래에는 이처럼 외상거래가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대기업들의 거래조건은 많이 좋아졌지만, 문제는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사이의 2차 거래가 문제다. 동반성장평가에 참여하지 않는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의 거래행태도 납품기업에 불리하고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어느 경제신문에서 중소기업 CEO를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 1년’ 중소기업 정책을 평가한 기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100점 만점에 76점을 주어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과의 불공정거래 관행의 개선분야는 50.5%가 잘하고 있다고 긍정평가를 했다. 동반성장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보았는데, 33.6%의 중소기업인들이 여전히 시급히 개선할 과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을 꼽았다. 6개월과 60일의 관행을 바꾸려면 모든 기업들이 동참해야 한다. 대기업으로부터 30일 결제를 받아서 2차 협력사에는 6개월 결제를 해주는 것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거래다. 무려 5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거래이익을 어느 한쪽이 차지하는 것이다. 나쁜 결제조건의 대물림이 아니라 좋은 결제조건을 나쁘게 바꾸는, 나만 잘살자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는 협력기업을 두고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인식개선 노력이 각별히 필요하다.

지난해 독일과 프랑스의 다국적기업 몇 군데를 방문해서 동반성장의 문화를 파악했었다. 가장 먼저 물어 본 것이 납품대금 결제조건과 단가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두 나라에서는 납품대금을 언제 지급하라고 법으로 정한 것은 없었지만, 대개 60일 이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단가결정이나 인상은 그 요인이 발생하면 중소기업이 협의를 요청한다고 하였다. 단가인상이나 상거래는 기업들처럼 거래 주체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은 산업문화인 것이다.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고 잘 지켜지는 영역이 아니다.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잘 지켜 나가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규제로 질서를 잡기보다 스스로 잘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동반성장의 문화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듯이, 기업 간의 대금결제 문화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나아질 것이다. 골목상점에 외상이 사라진 것처럼 기업 간에도 외상거래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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