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학자 奇遵(기준)이라는 분은 여름 날 널리 쓰이는 부채를 소재로 세상인심의 변덕스러움을 재치 있는 글로 표현했다. 날씨가 더워서 나를 아끼고 좋아해 준다고 어찌 기뻐할 수 있으랴(炎而用何喜), 날씨가 추워지면 나를 버리는데 버려진다고 어찌 슬퍼하며 성낼 수 있으랴(凉而捨何怒), 내게 다가오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리라(順所遇安厥分).
예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 다를 바 없다. 필요할 때는 그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안달하며 수선떨다가 필요치 않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내던지고 마는 세상의 모습들을 炎凉世態(염량세태)라 말하기도 한다. 중국 역사뿐 아니라 한국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척박스러운지를 잘 보여 주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아마 인류의 종말이 있기까지는 그럴 것이다. 요즘도 정가에서는 심심찮게 K씨, I씨 등이 회자되고 있고, 기업 속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인재들이 조마조마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나. 옳지 않은 일을 하거나 아부 떨며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사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