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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그래도 설 연휴기간 푸근하다니 다행이다. 고향 가는 길이 즐겁고 설레기는 하지만 그놈의 교통사정이 워낙 고생길인 까닭에 날씨라도 춥거나 궂기라도 하면 모처럼의 설렘이 짜증으로 변해서다. 하지만 이번 설엔 이마저 위안이 되지 못할 듯싶다. 전국적으로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는 AI가 ‘가야하나 말아야하나’라는 원초적인 고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도 예방차원에서 고향방문 자제를 직간접으로 홍보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을 본다는 설렘에 벌써부터 명절을 기다리던 시골집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내려오라고 하자니 그렇고, 그냥 있으라고 하려니 섭섭하고….’ 답답한 마음에 TV를 틀어보지만 뉴스에서 AI 소식이 늘어나면 날수록 주름진 얼굴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즐거워야 할 설이 시름으로 가득 차 우울함으로 변한 꼴이다. 도심보다 농촌이 더욱 심하다. 우리네 고향, 특히 농촌 어디 한 곳 닭 한두 마리 키우지 않는 곳이 없는 게 현실임을 놓고 볼 때 고민의 깊이를 헤아리기 충분하다. 마치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이 설을 맞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설을 맞아 고민이 깊어지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가족과 모일수 없는 많은 사람들 또한 같은 처지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설을 맞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적어도 이랬다. ‘귀성·귀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어떻든 찾아갈 곳이 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고단한 몸, 시름겨운 마음으로 고향집 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른들 얼굴은 환하게 피어난다’며 명절을 기다리고 이것저것 챙기고 마련했다. 덕분에(?) 귀성열기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고향에 내려가면 ‘역시 오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갈수록 아픈 곳 늘어나는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들고 깔깔대는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어렵게 마련한 선물 보따리가 초라해도 가족 친지들이 모여 앉으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활짝 피게 마련이다. 세상사는 일이 아무리 버겁더라도 이때만큼은 살가운 가족의 정과 푸근함을 듬뿍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반가운 얼굴들과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행복해 했다. 그래서 고생을 마다 않고 막히는 길 미끄러운 길을 뚫고 명절 때마다 꾸역꾸역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이런 고향의 마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예전 같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정서를 공유해온 부모님들이 짝을 잃으시고 승용차 등 교통의 편리함으로 수시로 내려가다 보니 사연이 쌓일 새가 없어진 탓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향은 ‘마음을 열고 기댈 언덕’으로 생각한다. 해서 잘 먹고 잘살 때, 심신이 편할 때나 괴로울 때, 좌절할 때 등등 삶의 언저리에 갖가지 일이 생길 때마다 과거의 고향시절을 떠올리며 인생을 반추하는 기회를 갖는다.

한 데 모여 좋은 일, 고달픈 일 함께 나누며 ‘세월의 매듭’을 지어야 하는 설 명절, 이런 명절에 고향이 썰렁하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리고 못가는 자식이나, 기다리는 부모나 모두가 불행이다.

시인 김남조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가 생각난다. “-중략- 닭이 울고 날이 새고/설날 아침이다/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 하러 왔냐/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좋은 소식 가지고 왔거들랑 까치야….”

모레가 설이다. 오늘 밤 자식들이 못 온다는 소식을 받은 고향집에선 아버지가 뒤척이는 어머니에게 “안 잘껴”라고 핀잔 섞인 소리를 퉁명스럽게 내뱉고, 고향을 찾지 못한 자식들은 부모님이 계신 그곳을 그리며 잠을 뒤척일지도 모른다. 이런 집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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