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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66년 만의 ‘인증샷’

 

사진을 처음 찍은 한국인은 1860년쯤에 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로 중국에 갔던 이의익(李宜翼)과 그 수행원들이다. 이들은 베이징(北京) 소재 러시아인 사진관을 찾아 초상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갖고 돌아와 친지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언제 사진기술이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한성순보 1884년 2월14일자 잡보란에 실린 기사를 근거로 도입 시기를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기사는 이렇다. “지난 여름 저동에 살고 있는 우후를 지낸 김용원이 일본인 사진사를 초빙해서 촬영국을 설치했으며 금년 봄에는 마동에 사는 지운영 또한 촬영국을 설립했는데… 중략.”

촬영국 설치는 지금의 사진관 개업을 말한다. 내용대로라면 김용원은 1883년 여름에, 지운영은 1884년 봄에 사진관 문을 연 것이다. 이중 지운영은 개업과 동시인 1884년 3월16일, 고종의 어진(御眞)을 촬영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진 기자재는 매우 고가였다. 때문에 사진 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고 자연히 대중보다 특권층이나 부유층의 독점물로 인식됐다. 해서 수난도 많았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사진관을 파괴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마저 금지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구 문물 거부는 많은 속설들을 만들어내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사진기가 영혼을 빼앗아 간다느니, 셋이서 사진을 찍으면 가운데 사람은 얼마 살지 못한다던가, 부부가 같이 촬영하면 이별한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괴담이 만연했다. 130년이 지난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3일) 여야 국회의원 전체가 모여 66년 만에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초대 국회) 의원들이 사진 찍은 후 처음이다. 괴담을 믿었던 것도 아닐진대, 19대 국회까지 오면서 왜 단체사진이 한 차례도 없었는가에 대해선 이유가 불분명하다. 사진 찍고 나서기 좋아하는 국회의원들인데도 말이다. 다만 국회 탄생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4·19(1961). 5·16(1963) 등 정치 격변이 계속돼서 그랬다는 변명은 있지만 어쩐지 궁색하다. 66년 만의 ‘인증샷’. 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자주 모이는 여야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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