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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이 겨울에 봄이 왔구나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라고 했던가. 입춘인 어제(4일)부터 몰아친 추위가 오늘도 수그러들 줄 모른다. 강원도 산간지방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다고 하니 이러다간 ‘입춘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입춘을 시샘하는 한파 속에서도 남쪽 지방에선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다. 추위가 지나면 ‘오는 사랑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봄도 성큼 우리 곁에 다가 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밭두렁의 냉이, 야산의 이름 모를 꽃, 그 어떤 작은 풀 잎 하나라도 갑자기 어느 한 순간에 불쑥 돋을 수 없다. 겨울이라는 고난을 참고 이기며 오랜 기다림을 거쳐야 생명의 부활을 꿈꿀 수 있고 그래야 바위같이 두꺼운 얼음장을 밀어내고 마침내 파란 새싹을 틔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놈이 고약해서 매번 만만히 물러서질 않는다. 혹한이라는 군사들을 보내 지상 지하의 많은 생명들에게 시련과 절망감을 안겨주기 일쑤다. 그렇지만 이런 악조건도 생존에 대한 굳은 의지와 끈질긴 정신력을 막지 못한다. 삼한(三寒)도 결국 새순의 연약함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입춘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모든 생물들은 감지하고 있다. 마침내 움직일 만한 기후조건에 다다랐다는 것을 아는 이때, 비록 약하지만 쪼그만 움을 뾰족 내민다. 극한 상황을 뚫고 눈 덮였던 겨울 들판과 숲에서 나타나는 봄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봄이 시작되고, 들어오고 나간다는 식의 이미 있던 것들의 이동이 아니라 때가 되어 새롭게 세워진다는 뜻의 입춘(立春). 그 입춘의 입자를 들어온다는 의미의 들 ‘입(入)’이 아니라 세운다는 의미의 설 ‘립(立)’을 사용하는 것도 이 같은 의미다.

고은 시인은 ‘입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오는 봄을 고맙다고 했다. “아직도 추운 밤인데/아직도 추운 아침 꼼짝하기 싫은데/내 동생 만길아/오늘이 입춘이구나 /얼마나 고마우냐 오늘이 입춘이구나/아직도 겨울인데/이 겨울에 봄이 왔구나/하늘도 부옇다/보아라 이쪽 장구배미에도/저 언덕 비알밭에도/냉이 뚝새파랗게 돋아났구나/아무리 숨 막히던 긴 겨울이라도/겨울은/끝내 하나의 봄이고야 만다./그동안 언 산 언 것들/그대들도 끝내 녹고야 만다.”

예부터 입춘을 연초(年初)로도 여겼다. 봄의 기점이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겨울 내내 넣어두었던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고, 집안에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한해 살림의 시작을 준비했다. 그래서 미리미리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바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입춘이 끼어 있는 2월은 일년 중 가장 짧다. 짧은 만큼 봄도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올 테지만 이를 맞이하고 준비해야하는 마음의 여유가 덩달아 적어져서 아쉬움을 더한다. 특히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털고 새맘을 다지려는 사람들에게는 노루꼬리만큼 날짜가 짧게 느껴진다.

살다보면 생기는 것이 우리 마음속의 먼지다. 특히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집안 구석구석 뽀얗게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도 이런 저런 좋지 못한 마음이 쌓여 더러운 때가 덮인다. 세상사는 일이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미워할 까닭이 없는데도 미워하고, 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남의 일에 질투한다. 남보다는 나를 우선으로 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상대가 나에게 해주지 않는다고 원망도 한다. 인관관계도 배려보다 욕심을 앞세우며 귀찮은 일이면 무조건 피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쌓인 마음속의 먼지들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세상을 살아온 연륜만큼 켜켜이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봄이 일어선다는 입춘(立春)이 지났다. 마음의 창문을 열고 이런 먼지들을 훌훌 털어내 보자. 그리고 예년엔 경험해 보지 않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봄 풍경을 맞이하자. 새로운 한 해가 열리는 봄의 서곡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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