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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IN]앵그리 국민의 모순된 분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중 대한민국을 가장 들끓게 한 것은 아마도 안현수 현상일 것이다. 민족주의의 각축장인 올림픽에서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긴 안현수 선수에게 비난이 쇄도할 것 같았지만 우리 국민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의 귀화 배경에 빙상계의 파벌 문제 등 부조리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빅토르 안의 성공 드라마를 응원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해석을 한다. 하나는, ‘안현수 현상’은 불공정하고, 개인을 조직의 1회용 도구로 여기는 한국사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분출되고, 안 선수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과거에는 배신자로 불렸을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 내지 국가주의로 점철됐던 올림픽에서, 국적과 상관없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한 개인의 성취를 축하할 줄 아는 국민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소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삼류 한국인’이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여자 쇼트트랙 500m 결승에서 박승희 선수를 넘어뜨린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를 사이버 공격한 한국인들에 대한 해외 네티즌들의 비판이다. 크리스티는 SNS 공간에서 ‘죽어라’ ‘영원히 저주하겠다’ 등 수천 개의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고, 심리 치료를 위한 상담까지 받았다.

이에 대해 해외 네티즌들은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선수의 개인 인터넷 공간에 악성 댓글을 쓴 것은 테러에 가까운 행동이라며, 한국은 삼류 국가, 최악 국가라며 비난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역시 ‘실격보다 더 아픈, 성난 한국인(angry Korean)들의 악플 공세’라고 꼬집었다.

우리 국민은 왜 이렇게 안팎으로 분노가 들끓는가. 왜 이제 겨우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은 외국 선수가 정신적 쇼크를 당하게까지 그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가?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우리시대를 헝그리 시대가 아닌 앵그리(angry) 시대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대가 열리는 때, “이명박 시대를 시험하는 것은 당장의 ‘경제 살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헝그리 사회가 아니라 앵그리 사회이기에 경제 살리기의 최종 목표는 사회갈등의 해소와 사회통합의 구현을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새 정부의 과제를 지적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은 여전히 앵그리한 것 같다. 경제 성장의 실질적 혜택이 서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돌아가지 않고, 파벌, 인맥에 의한 불공정 구조와 사회갈등도 여전하다. 지친 국민들은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을 패배자나 피해자로 만든 사회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한다. 개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 줄 따뜻한 인간관계도 흔치 않은 시대에 그 절망과 분노는 자살이나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특히 온라인 시대에 타인에 대한 공격은 쉽고 빠르고 무차별적이며, 전 지구적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삼류 한국인이라는 오명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앵그리 국민의 물리적, 정신적 복지는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사회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 일차적인 노력은 정부의 몫이라 생각한다. 성장과 경쟁 위주에서, 질적으로 나은 삶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제도를 갖추고, 분노와 고통이 팽배한 사회의 국민들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들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공정사회에 대한 욕구도 있으면서, 나와 상관없는 타자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는 모순이 내 안에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의 고통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시민의식은 그러한 자기 관찰을 통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에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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