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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엄이도종<掩耳盜鐘>과 이통안민<以通安民>

 

최근 한국 홍보 전문가로 알려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하는 ‘성웅 이순신’ 프로젝트가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한민국 영웅 프로젝트’ 제2탄으로 진행 중인 이 사업은 가로 30m, 세로 50m 대형 천 위에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난중일기 내용을 붓으로 직접 써서 이순신 장군 이미지를 형상화한 후 오는 4월28일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광화문 일대 대형 건물에 전시할 계획이다. 특히 서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일본 내 이순신 전문가로 손꼽히는 전 일본 공립여자대학 기타지마 만지(北島萬次) 교수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외국인 첫 난중일기 쓰기를 성사시켰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인으로서 이순신, 임진왜란, 난중일기 등을 꾸준히 연구한 기타지마 교수는 이순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무엇보다 장군으로서 부하들을 먼저 생각하고 신분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고 한다.

새삼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표적인 ‘소통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소통(疏通·communication)은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는 것’, 즉 마음 나눔이다. 진정한 소통이란 나를 비우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통은 인내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이해하고 다가올 때까지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상대방의 호응을 얻기 위한 행위, 설득이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동료와 부하들은 물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지원군으로 파병돼 온 명나라 장수들까지도 감복시킬 정도로 설득의 달인이었다. 명나라의 도독 진린(陣璘)은 선조에게 “통제사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經天緯地·경천위지)와 나라를 바로 잡은 공을 세운 인물(補天浴日·보천욕일)”이라고 찬양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소통 없는 소통 정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취임 전부터 강조해 온 소통은 온데 건데 없고 대신 1년 내내 ‘불통’이 박근혜 정부의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올 연초에는 이정현 홍보수석이 ‘원칙대로 하는 게 불통이라면 자랑스러운 불통’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의 불을 지폈다.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이나 의료법인 영리 자법인 허용 등을 둘러싼 의사협회의 반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통의 전형이다. 중대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해와 설득은 무시한 채 반발하면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경 일변도로 치닫는다. 소통의 시작은 역지사지로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다. 원칙과 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고집한다면 소통은 요원하며 엄이도종(掩耳盜鐘)과 다름 아니다.

민주당은 어떤가. 사사건건 박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하고 물고 늘어지지만 지난 연말 국회를 공전시키며 민생 현안 처리마저 미루는 등 역시 ‘불통 정당’이란 불명예를 쓰고 있다. 게다가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 관철,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의혹 규명,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3대 요구안의 수용을 요구하며 3개월 만에 또 장외집회에 나섰다. 이런 당의 투쟁방식에 대해 최고위원까지 “야당에서 주장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외 투쟁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본연의 임무는 팽개친 채 툭하면 폭로전에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장외로…. 소통 빈곤에 설득력의 부재로 만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국민의 경고를 겸허하게 들어야 할 때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올해 전 세계 주요 신년사를 분석해 10개의 화두로 정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소통과 협력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이통안민(以通安民)’이다. 세계의 리더들은 국내외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맞아 ‘소통’의 힘을 강조했다. 시민사회는 물론 지역, 기업, 국가 간 소통과 협력이 요구된다는 내용인데,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메르켈 독일 총리, 시진핑 중국 주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다양한 갈등 해결을 위해 소통과 협력을 강조했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권위나 위협보다 수평적 대화나 논리적 설득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상대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으며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파트너로서 상생 발전을 도모해 나간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정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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