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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빈틈도 행간도 없는 감옥 ‘치매’

 

오래된 언론계 선배가 있다. 그 선배를 만나면 요즘도 치매에 걸려 고생한 홀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여든을 훌쩍 넘길 때까지 악다구니가 심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방 벽에까지 그림을 그렸던, 그래서 며느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고통의 10년에 가두어 놓고 인내를 바닥나게 했던 그런 얘기다. 이미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치매의 볼모’로 잡혀 있던 그때의 고통은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두려움 섞인 말을 덧붙인다. ‘가족력이 있으면 걸릴 확률도 높다는데…’ 하고는 금방 칠십 줄에 들어선 지금까지 아직 징조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안을 삼는다. 아주 가끔이지만 선배의 이 같은 얘기를 들으면 정진규 시인의 ‘눈물’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소설가 이청준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중략 /그래서 더 깊이 내 가슴을 적셨던 아흔 살 어머니의 그의 어머니의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는데,/지난 설날 고향으로 찾아뵈었더니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집엔 빈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강아지를 송아지라고, 큰 며느님더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라고 부르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중략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졸립든지 그런 몸의 말들은 아주 정확하게 쓰시더라는 것이었는데,/거기에는 어떤 빈틈도 행간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 있더라는 것이었는데,/그리곤 꼬박꼬박 조으시다가 아랫목에 조그맣게 웅크려 잠드신 모습을 보니/영락없는 자궁(子宮) 속 태아의 모습이셨더라는 것이었는데”

시 속에 녹아있는 궤적처럼 몸이 멀쩡한 병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게 치매다. 치매도 그냥 기억만 없어지는 건 양반 축에 속한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공격적인 언행이 수반되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다. 이런 치매를 ‘문관(文官) 치매’와 ‘무관(武官) 치매’로 나누기도 한다. 적극적이고 씩씩하던 노인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고 얌전해지면 문관 치매, 평생을 부드럽고 소극적으로 사시던 분이 갑자기 거칠어지면 무관 치매라나.

낫는다는 기약 없이 자꾸 낯선 행동을 하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든다. 식사, 목욕, 청소, 빨래 등 수발은 그야말로 전쟁과 다름없다. 요양원으로 모신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돈과 인내를 바닥내기 일쑤다. 그래서 아픔이 절절이 묻어나는 이야기도 무수히 많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어디 부모 사이뿐이겠는가.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치매인 경우 노년을 황폐화시키기 일쑤다. 때론 상대의 고통을 함께 안고 인위적인 죽음에 이르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2011년 31만명이던 이런 치매 환자도 올해 50만명으로 늘었다. 가족을 포함해 200여만명이 길고 긴 고통의 터널에 갇혀있는 셈이다. 10년 후면 100만명이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병 중 가장 악질로 꼽히는 ‘그놈’이 고령화 시대를 틈타 길고 긴 싸움을 더욱 거칠게 걸어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싸움에 어떻게 나서야 할까. 치료와 지원 대책은 나라에 맡기고 환자를 대하는 ‘돌봄’의 방법만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그중 한 가지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위마니튀드(humanitude)라는 접근 방식이다. 가족이나 간병인이나 치매 환자를 대하는 시선, 신체 접촉, 말 걸기, 자립 보행보조 등을 ‘인간적인 태도’로 돌본다는 게 접근방식의 핵심이다. 예를 들면 환자를 볼 때 무릎을 꿇듯이 자세를 낮춰서 눈높이를 맞춘 다음 눈과 눈이 온전하게 마주치도록 해야 하다거나 부드러운 접촉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느끼게 해주고, 치료 대상이기 이전에 인간적 유대의 파트너라는 감정을 진심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비록 작은 것 같지만 효과가 커 최근 일본에서 각광받고 있다. 사랑과 정성은 어느 병에서나 치료의 으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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