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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이산가족 상봉, 또 다른 봄날을 기다리며

 

“이산저산 꽃이 피니 / 분명코 봄이로구나. /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 허드라. /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데 있나.”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노랫말이다. 젊은 시절에 판소리를 잠시 배우면서 즐겨 불렀던 단가이다. 춘삼월이면 동네마다 이곳저곳의 산에 꽃이 핀다. 봄이 왔지만 요즈음 세상일들은 그리 시원치 않다. 오늘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반백의 내 모습이 낯설다. 어느새 청춘도 나를 버렸는데 이렇게 다가온 봄도 이내 떠날 것이다. 일상의 삶도 봄날에는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그래서 유독 녹아내리듯 선잠이 많아지는 봄이다. 어디선가 이런 봄날에도 사람들의 일상은 제각기 바쁘고 활기차다.

봄날에 작별 만남, 이산가족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때문에 우리들 관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던 행사가 있었다. 금강산 면회소에서 3년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행사는 1, 2차 상봉단을 구성해서 5박6일 일정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그리던 혈육과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다같이 ‘고향의 봄’을 소리 높여 합창하기도 했다. 비공개 개별상봉 일정에서는 이산가족들이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았다.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산가족들에겐 가장 ‘각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채우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사연도 구구절절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 이야기는 상봉장 밖으로 봄내음 퍼지듯이 금강산의 겨울을 밀어내었다.

‘구급차 상봉’으로 화제가 됐던 고령의 이산가족은 북한의 자녀들과 만나 이제 평생의 한을 풀었기에 여한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한 지 4개월도 채 안 되어 아내와 뱃속의 아들을 64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사연도 어느 스토리텔링보다 극적이다.

과연 얼마나 닮았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관심이 증폭됐다. 텔레비전에 비쳐진 상봉장에서 그 아들과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부자였다. 닮아도 너무나 많이 닮아있었다. 그들은 얼싸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또한 1·4후퇴 당시 살던 집에 마루까지 아장아장 나와 손을 흔들던 어린 딸이 어느새 노인이 된 사연도 있었다. 다시 만난 고령의 아버지에게 연신 밥을 먹여드리는 ‘스토리’가 전해지는 동시에 ‘텔링’으로 회자되었다.

다시 만날 봄날을 위해서

이산가족상봉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첫 단추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통한의 세월을 보내온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일회성이 아닌 상봉의 정례화를 위해서 금강산 이산 면회소를 상시 운영했으면 좋겠다.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을 대규모화하기 위해서는 화상상봉 및 서신교환도 잘 활용해야 한다. 이산가족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번 만남에도 구급차에 타고, 휠체어에 앉아야할 정도로 고령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어떤 이유로든 오랜 생이별 끝에 성사된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체제경쟁 선전에 이용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남북의 현실적인 체제와 이념, 정치적인 문제를 초월한 그야말로 인간 윤리에 의거한 가족과 친지의 만남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남북분단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생이별로 빚어진 한을 달래는 진정한 길이다.

이제는 이산가족상봉 재개를 계기로 그동안 중단된 민간 차원의 문화예술 교류가 다시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짧은 2박3일의 작별상봉을 끝낸 뒤 버스에 탑승한 북한의 가족들을 남쪽 가족들이 버스 밖에서 배웅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또다시 기약 없는 만남을 뒤로 하고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둔 채 남북 가족들은 목메어 울면서 떠나보내었다. 이러한 일들이 봄날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 봄날이 다시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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