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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들꽃의 생명력 본받아 일본에 대처해야

 

따스한 햇살이 그리운 이른 봄,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헤치는데 갑자기 선녀가 눈앞에 다가온 듯 시야가 밝아진다. 산마루 양지녘에 자주색 꽃잎을 한껏 뒤로 제친 도도한 모습의 얼레지가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다. 꽃의 자태는 파격적인 개방의 아름다움 그 자체다. 꽃잎 6장이 뒤로 확 젖혀져 여인의 미(美)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얼마나 개방적인 꽃이던지 꽃말도 ‘바람난 여인’과 ‘질투’다. 이처럼 꽃잎을 열어젖힌 이유는 삐죽삐죽한 꿀 안내선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꿀벌이 찾아든다. 이름이 얼레지인 까닭은 잎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나의 발길을 붙잡는 들꽃은 구슬봉이다. 해맑은 미소를 오롯이 머금은 숲 속의 작은 연보랏빛 요정들이 재롱을 부리는 듯, 귀여운 꽃이 산들바람에 가냘프게 떨고 있다. 양지바른 땅위에 슬며시 고개를 든 구슬봉이는 나그네를 길섶에 주저앉게 만든다. 심술궂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햇살에 만족하며 나지막이 꽃을 피운 구슬봉이는 초롱불을 한 데 모아 주위를 밝히는 봄의 전령이다. 꽃말도 귀여운 ‘재롱둥이’와 ‘기쁜 소식’이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심한데 행여 추운 밤에 얼어붙지나 않을까?

저편에 색달라 보이는 노루귀 서너 송이가 꽃봉오리를 펼치고 있다. 보랏빛 꽃이 만개하면 순박한 시골 소녀의 수줍음으로 승화된다. 노루귀는 보라색, 연분홍색, 흰색 꽃이 서너 송이씩 묶음으로 피어난다. 모든 색의 꽃을 감상해 봤지만 역시 으뜸은 흰색이다. 아무리 꽃을 바라봐도 노루의 귀가 연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밀의 열쇠는 잎에 있다. 노루귀는 꽃줄기가 먼저 올라와 한 줄기씩 꽃을 피운다. 그 다음 땅을 헤집고 잎이 올라온다. 깔때기처럼 말려진 잎, 그 주위에 난 보송보송한 솜털. 진짜 노루의 귀를 닮았다.

기왕 들꽃 탐방을 나온 김에 다른 꽃도 찾아보자. 습기가 가득한 구릉에 푸르뎅뎅한 이파리를 땅에 깔고 꼿꼿이 꽃대를 곧추세운 처녀치마가 보인다.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아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싱싱한 꽃대를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펼쳐진 잎은 처녀의 주름치마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처녀치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각에서는 일본 이름을 번역하면서 파생된 명칭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것은 꽃을 감상해 보지 않은 데서 오는 오류(誤謬)다. 우리 조상이 꽃의 정취를 살려 지은 이름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10여년 전 나는 들꽃이름이 변경된 데 대해 항의한 적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들꽃에 해학적(諧謔的)인 이름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개불알꽃이었다. 남성의 심벌처럼 생긴 꽃에 ‘개’자를 붙여 개불알꽃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복주머니란’으로 바뀌었다. 물론 복주머니처럼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조상의 해학적 표현이 묻혀버려도 괜찮은 것인지….

요즘 우리사회에는 너무도 골치 아픈 사건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일본이 선두를 달린다. 일본은 일본군이 강제동원한 위안부 존재 자체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속셈으로 ‘고노 담화 검증팀’을 설치했다. 또한 일 정부의 방조아래 재일 한국인을 추방하자는 증오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미 국무부조차도 2013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일본 극우단체들의 혐한(嫌韓) 활동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을까.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제대로 된 대응책을 세우지 않는다.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 모르고 자신들만의 진영논리에 빠져든다. 도무지 화합이라는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사안이 있을 때만 발끈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A little pot is soon hot).

들꽃은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봄철이면 어김없이 고개를 내민다. 짓밟히고 문드러져도 다시 살아난다. 이러한 들꽃의 끈질긴 생명력을 본받아 우리도 일본의 대한(對韓) 침략의도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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