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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문화의 세기’라는 두 용어는 21세기의 거대한 흐름이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압축되면서 진행되는 이 현상은 범지구적으로 확산되었고 물과 공기처럼 우리들 주위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경우 발전이라는 구호와 마찬가지로 이 흐름은 우리 인류에게 행복한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으나 동전의 양면처럼 세계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생태계 파괴, 식량 위기, 끊이지 않는 전쟁의 위협 등은 우리가 세계화라는 이념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를 되고 있다.

한편, 문화의 세기라는 세기적 패러다임 또한 모든 문화 현상이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문화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치장한 새로운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세기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문화의 세기’라고 표현할 때는 지난 세기까지는 문화의 세기가 아직 도래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길고 긴 인류 역사를 통하여 문화가 중심이 된 시대가 없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앞으로도 문화가 모든 삶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될지 회의적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해 문화는 오히려 급속도로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소수의 지역문화는 거대 선진문화자본에 쉽게 종속되어 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배우 김수현이 출연한 ‘별에서 온 그대’가 대륙을 뒤흔들고 있다는 소식이 매체들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김수현 소속사 키이스트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관련된 기업의 주식이 모두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여행지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 방영된 이후 중국에 ‘치맥(치킨과 맥주)’에 이어 라면 열풍까지 일어나 관련사의 라면 매출액이 전년대비 38%나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김수현이 중국 장쑤성 TV 예능프로그램 ‘최강대뇌-더 브레인’ 녹화출연에 5억원이 넘는 출연료는 물론 전세기까지 제공받았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한 달 전 87만원에 판매한 입장권은 522만원에 팔리는 등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물론 암표까지 매진됐다고 한다. 최근의 한국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소위 중국 내의 ‘한류’ 열풍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나 한류에 대해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 뿌듯해야할 사안이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는 상업주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나 연예기획사를 중심으로 한 소위 문화자본은 단기간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문화자원으로서 지속적인 유지가 어렵다. 특히, 단기간에 형성된 자기문화 우월주의로 인해 상대국들에서는 많은 부작용들도 나타나게 된다. 이미 반한, 혐한의 징후들이 여러 나라에서 포착되고 있다. 문화적 우월주의는 민족주의와 결합해 팽창주의, 배타적 국수주의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적 콤플렉스가 문화의 옷을 걸치고 도깨비처럼 둔갑하는 위험천만한 현상들이다. 문화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성의 공존이 근간을 이루어야 ‘문화적’이다. 추구하는 지향점이 단지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이고 감성적이며 복합적인 층위가 잘 어우러져 있어야 의미 있는 교류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서 돌고 돈다. 역사처럼. 그래서 문화팽창주의적 관점에서 밀어붙이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중심의 가치체계와 문화우월주의의 폐해를 너무나 뼈아프게 겪었다. 근현대사는 우리 문화의 황폐화 과정과 가치폄하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와 문화의 세기로 대변되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이 기여해야 할 문화의 가치와 문화자원은 분명 한류를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한류에 열광만 할 수 없는 문화의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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