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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空約으로 환심 사려하지 마라

 

“뉴욕 양키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약속이야기입니다. 1926년 베이브 루스는 부상으로 입원 중인 소년 팬 조니 실베스터에게 월드시리즈에서 ‘너를 위해 홈런을 치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인볼을 선물했습니다. 10월7일 월드시리즈 4차전. 베이브 루스는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타석에 나섰고, 무려 3개의 홈런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홈런 덕분인지 소년의 병세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약속의 힘은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옵니다.”

내겐 오래된 습관이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라디오 버튼부터 누른다. 운전 중 귀에 박힌 이 문구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나오는, 중독성 강한 어느 기업의 광고다. 인터넷에서 주요 단어만 입력해도 검색이 가능할 정도로 꽤 알려진 일화다. 그런데, 원문을 인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신뢰 가는 기업 홍보(?), 아니다. 약속의 중요성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아무리 좋은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다. 망각의 동물이라 종종 자신이 한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지키지 않으려는, 아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는 데 있다.

선거철이다. 언론사도 덩달아 바빠지는 시기다. 출마자와 독자의 관심이 집중된, 지방선거와 관련한 기획보도 탓이다. 경기신문도 이미 선관위 등록을 마쳤거나 유력하게 거론되는 경기·인천지역 후보자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공약도 게재해 유권자의 변별력을 도왔다. 특이한 점은, ‘극비다’ ‘공천되면 한다’는 답변이다. 경쟁후보에게 자신의 공약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내 생각은 다르다. 준비가 안 됐으니 내놓을 공약이 없을 뿐이다. 한마디로 주민을 위한 공약을 내놓지 못하는 후보자는 자격 미달이다.

지역 현안이 공약으로 제시된 기초선거는 그나마 다행이다. 광역선거 공약은 기상천외하다. 현재 예비후보자들이 내놓은 주요 공약을 뽑아보자. 무상버스 도입, 대학입학금 폐지, 공공주택 2만호 공급, 경기특별자치도 설치, 새마을 통일대학 설립, 수원비행장 이전 대선 공약 채택, GTX 건설 등 한결같이 그럴 듯하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치르고 광역단체장의 임기가 끝나면 우리 삶의 질은 선진국 수준으로 급상승한다. 어느 당의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주민과 약속한 공약을 모두 지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내가 보기엔, 장밋빛 성격이 농후하다. 이들 공약은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조 단위의 예산을 다루는 광역단체라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요불급하다며 타 예산을 전용하면 풍선효과를 자초할 뿐이다. 자칫 지방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국가사업으로 추진돼야 할 대규모 공약도 눈에 띈다. 물론 공천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유권자의 눈길부터 끌고 볼 일이다.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도 포함됐을 게다. 그러나 신뢰를 근간으로 해야 하는 이들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나 지속 가능성 면에서는 글쎄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화성 보선이다. 지역 국회의원선거에 ‘심판론’이 등장했었다.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라는 의미를 부여한 뒤 기초연금 공약 문제와 국정원 SNS, 채동욱 사건 등을 내세우며 국정 심판에 나섰다. 당시 데스크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행정부 감사는 국정감사의 영역이지 보궐선거의 몫이 아니었다. 이번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실현 가능한 재정 규모 내에서, 실현 가능한 법규 내에서, 실현 가능한 임기 내에서 지역의 앞날과 지역민 삶의 질을 위한 공약으로 승부해야 한다.

맞다. 기업광고의 카피처럼 ‘약속의 힘은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상황이 변해서, 재정 상태가 여의치 못해서 부득이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변명도 안 된다. 공약(空約)을 남발하지도, 환심을 사려고도 하지 마라. ‘약속은 부채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약속이라는 뜻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제안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정치계를 떠나겠다는 공약(公約)부터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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