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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로드 오브 워(Lord of War)

 

“전 세계에 팔린 총은 5억5천만정. 12명 중 1명만 총을 갖고 있으니 이게 문제다. 나머지 11명은 어떻게 무장하지?”

2005년 제작된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무기 밀매업자 유리 오로프(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소련이 해체된 혼란의 와중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수한 무기를 전 세계 분쟁지역에 팔아넘긴다. 또한 풍부한 자원과 핵무기 제조 기술까지 갖춰 한때 동유럽의 군사강국으로 인정받았던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무기까지 팔아치우는 부패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당시 세계 5위의 군사강국으로 러시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었다. 하지만 동서 냉전 종식 후 평화논리에 휘말려 자주국방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군축 과정에서 배고픈 군대와 정치인들은 돈이 될 만한 무기를 내전이 한창인 아프리카 등지로 빼돌려 뒷돈을 챙겼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약 34조원(320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가 증발해 버리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때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motive)로 ‘로드 오브 워’라는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까지 치달았던 크림반도 사태는 싱겁게 러시아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1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 궁에서 크림공화국과의 합병을 선언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비탈리 야레마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우리는 독립 이후 23년간 싸워본 적이 없다. 다른 국가들이 사용하는 현대식 무기도 전혀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군사력은 형편없었다. 냉전이 종식됐다는 이유로 무력을 포기한 결과였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무능도 러시아에 완승을 안겨준 요인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잔다르크’라고 칭송받던 야권 지도자 율리야 티모센코 전 총리는 자국 영토가 러시아에 합병되는 순간 허리 디스크를 이유로 독일의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임시정부 총리는 “내 아내도 러시아어를 쓴다”며 말장난을 했을 뿐이며, 법무장관도 “우크라이나 시민을 위해 수용소를 설치하겠다”고만 말했을 정도다. 어느 지도자도 러시아에 당당히 대처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단지 미국과 유럽 등 서방(西方)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또한 자국군 장교가 피격됐는데 대응사격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할 당시 우크라이나 군용차량들은 시동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지난 26일까지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 시설 193곳을 모두 장악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총성이 한 발도 울리지 않았다니 참으로 한심한 군대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잃고 난 뒤에야 장애인 복지비를 국방비로 전환하고 육군도 4천명을 증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무력을 포기한 국가의 말로(末路)는 비참하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빼앗긴 이후에도 러시아와 인접한 동부 영토의 상실까지 걱정해야 한다. 경제격차, 인종구성 등에 따라 친(親)러시아계와 친(親)서방계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한때 78만명에 이르던 군대를 14만 명으로, 탱크 6천500대를 776대로, 전투기 1천500기를 208기로, 전투함 350척을 26척으로 감축했던 결과가 이토록 참담할 줄이야!

요즘 우리사회에는 평화가 최고의 선(善)이라며 군축을 실현해야 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약소국인데도 강대국이 평화를 보장해 주기 위해 대화를 하려 할까?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을 때에만 대화가 가능하고 평화도 보장된다. 우리는 평화논리에 사로잡혀 무기를 팔아치우며 국방을 등한시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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