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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그래도 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봄은 왔지만 여전히 새벽잠을 설친다.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렇다. 어제도 그랬다. 이럴 땐 항상 머릿속이 복잡하다. 올해 부쩍 제멋대로 피는 봄꽃마냥 생각도 뒤죽박죽이다. 그러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이어지기라도 하면 답답함은 더 큰 무게로 마음을 짓누른다. 아- 나도 나이가 들었나? 이처럼 불안함과 처량함, 서글픔이 교차되니.

그리고 곤한 새벽잠을 자는 집사람이 갤까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찾았다. 며칠 전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였다. 액정이 밝아지며 문자가 뜬다.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의미’ 심심할 때 읽어보라며 보낸 글이다. ‘1세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18세 입시 스트레스로 치를 떠는 나이. 29세 아무리 변장을 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가는 나이. 34세 꾸준히 민방위 훈련을 받을 나이. 41세 가끔은 주책바가지 짓을 해서 남을 웃기는 나이. 52세 ‘거 참 이상하다’라는 대사를 중얼거리는 나이. 65세 긴 편지는 두 번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나이. 100세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 등등.’ 인터넷을 통해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일종의 반 유머인 이 글은 1세부터 100세까지 연령별 의미를 부여했는데, 볼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오며 ‘누가 작성했는지 참 잘도 갖다 붙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나이까지 살 수나 있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비록 가끔이었지만 곧 잊어버리고 나이 듦에 관대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어릴 땐 적어도 이랬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은 형들이나 하고 코치나 감독은 삼촌뻘의 아저씨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돌아보니 그들이 조카뻘이거나 동년배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아니 벌써’라는 독백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아버지 연배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들이 동년배거나 후배들로 바뀌었다. ‘세월이… 뭐’라며 당연함을 애써 정당화하려 하지만 엄습해오는 억울함(?)은 지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것이 있고 줄어드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요즘 눈치와 아부,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세상 경험이 많아지니 눈치가 늘고, 세상에 적응하자니 아부가 늘고, 그렇게 이것저것 늘다보니 몸무게까지 덩달아 늘어 비둔함을 자주 느낀다. 그런가 하면 어제 같이 새벽잠은 줄었다. 기억력과 자존심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생활 속에서 실감하고 있다. 방금 놔둔 휴대폰과 벗어 놓은 안경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다반사고 잘났던 자존심도 풀 먹인 모시가 물에 젖은 것처럼 각이 무뎌졌다. 이 또한 모두가 나이를 먹여준 세월 탓이 아닌가 생각해 보지만 위안은 역시 안 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그 답은 희망과 좌절에서 찾을 수 있을 듯싶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는데 연륜이 더해지면서 행동이 제한되고 생각과 의지가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라 지레짐작해 본다. 하지만 몇 살까지 나이를 먹고 몇 살부터 나이가 드는 것인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나이를 먹었다는 서글픔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지나온 날들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제 아침도 그래서 털고 일어나 일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수선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세월을 즐기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해야겠다는 뒤늦은 다짐도 해봤다. 흐르는 세월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숙명 앞에 나이 듦은 기뻐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어서 마음속 깊이 새겼다. 내가 자신 있게 나이를 먹어가는 노력을 하며 즐겁게 나이테를 둘렀는지 반성하면서…. ‘나이를 그냥 주어지는 대로 먹지 말고 어떻게 나이를 먹을지 생각하면서 먹으라’는 말이 유난히 기억나는 어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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