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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존재

 

삶을 살아가는데 예고되지 않은 어려움이 닥치는 게 우리 인생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라도 하면 당황해 하고 애태운다. 이럴 때는 으레 생활이 뒤죽박죽되게 마련이다. 심하면 얽힌 생활마저 중간이 잘려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그 단면 속에 왜 그리 복잡한 내용들이 많은지에 대해서도 놀라게 된다. 어려움에 이어 오는 게 불안과 걱정 근심이다. 이런 것들이 오래 되면 두려움과 우울함으로 이어지고 마음엔 부정적 감정의 찌꺼기들이 지속적으로 쌓여 마치 커져버린 눈덩이처럼 치우기도 힘들다.

잊고 살아온 어려움이 닥쳐 내게 근심과 걱정이 시작된 것은 지난주 화요일 출근하자마자 한통의 전화를 받으면서였다. “정준성씨 맞습니까.” “무슨 일이시죠.” “119구급대원인데요. 한유순씨 아시죠.” “네 제 어머닌데요.” “지금 수원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 모시고 왔는데 접수와 처치를 하려면 주민번호가 필요해서요. 번호가 어떻게 되죠.” 덜컥 걱정이 앞서 버벅거리다 간신히 불러준 후 “어디가 다치셨냐”는 물음에 “계단에서 넘어지셨다는데 머리를 다치신 것 같다”는 대답이 귓전을 때리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전화를 끊고, 서둘러 달려간 응급실엔 머리와 얼굴이 심하게 붓고 멍이 든 어머니가 누워계셨다. 언뜻 보아도 계단에서 구르신 게 분명했다. 의사의 자초지종을 묻는 질문에 간신히 대답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의식불명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쿵쾅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검사결과는 약간의 뇌출혈과 쇠골 골절, 왼쪽 눈 부위 타박상. ‘절대 안정’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응급실 도착 10시간 만에 신경외과 병실로 옮겼다. 하지만 걱정과 근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입원이 장기화 되면, 당장 야간 간병은? 치매로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등등.

그런데 잠시 후 내일 온다며 집으로 갔던 막내 제수가 난감한 표정을 하고 병실로 다시 왔다. 의아해하며 “무슨 일이 있느냐” 묻자 평소 지병인 파킨슨병을 앓아온 친정어머니가 뇌경색 조짐을 보여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셨다고 한다. 검사결과 다행히 긴급상황을 넘겼으나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다음날 신경외과 병실로 옮겼는데 어머니 입원실 바로 옆 병실이다. 사돈끼리 지척거리에 몸져 누워 치료를 받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날 저녁, 문병 왔던 지인들을 배웅하고 지하 1층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뒤에서 누가 아는 척을 한다. 돌아보니 사나흘에 한번 꼴로 만나며 가족같이 지내는 30년 지기 친구다. 서로 “웬일”을 물으며 동시에 “어머니가 입원을….” “그래?”를 외쳤다. 제천에 혼자 살고 계신 친구어머니는 방안에서 넘어지셨는데 대퇴골이 부러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어제 아들이 있는 수원 큰 병원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간 간병을 위해 간편 복장을 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입원한 친구어머니를 뵙고 병실로 내려오며 우연치고 참 이같이 난감한 우연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열흘은 족히 입원해 있어야 할 세분 모두 혼자 사시는 80대 노모의 간병을 책임져야할 아들들은 장남으로 모두 60대여서 더욱 그랬다.

어머니 야간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간병 이틀 밤을 지냈다. 하지만 그 역할이 어디 쉬운 일인가. 3일째가 되자 같은 병실에 있는 전문 간병인들이 우러러 보이더니 이내 부모나 배우자의 간병을 위해 수년간씩 헌신한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로운 존재로까지 여겨졌다.

지난 월요일 결국 두 손 들고 전문 간병인을 구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모시지 못했던 죄책감으로 효자·효부를 자처했지만 쓰디쓴 참패다. 윗병실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긴 병’이 아니라 ‘짧은 병’에도 효자가 없다는 것을 실천한 꼴만 되어 버렸다. 간병과 일이 양립 가능한 사회 체제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런 것을 실현하는 게 진정 선진국으로 가는 복지 키워드는 아닌가. 간병(看病)은 예고 없이 찾아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혼돈으로 보낸 열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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