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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 저서 '송정사의' 발굴

다산 정약용의 친형이자, 어류학 박물지인 「자산어보」(玆山魚譜) 저자인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저술한 책으로 지금까지 제목과 그 내용 중 일부만 전해지고 있는 「송정사의」(松政私議)가 발굴됐다.
영남대 한문학과 안대회(安大會) 교수는 최근 발간된 국학 관련 학술전문지인 「문헌과해석」 제20호에 기고한 '정약전과 「송정사의」'라는 논문을 통해 새로 발견된 이 저술을 전면 소개하고 그 의미를 짚었다.
글자 그대로는 '소나무 정책에 관한 개인 의견'이라는 뜻을 지닌 「송정사의」는 당시 백성을 질곡에 빠뜨린 대표적 민폐 중 하나인 소나무 벌목 금지 정책에 대한 정책 제시를 담고 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이 저술은 서울 세화고 생물교사로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남다른 이태원씨가 문(文)모씨 소장의 「운곡잡저」 문집에서 찾아냈다.
「송정사의」는 정약용이 죽은 형 정약전을 추모하며 쓴 묘지명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 돌아가신 형 묘지명이라는 뜻)에 그 이름이 전하고 있으며 그 내용 중 일부로 다산이 인용한 몇 구절이 문집에 전하고 있을 뿐이다.
정약전 저술 중 현전하는 것으로는 「자산어보」와 80년대에 발견된 흑산도 평민의 표류기 「표해록」(漂海錄)이 있고 그밖에 「송정사의」를 비롯해 「논어난」(論語難) 2권과 「역간」(易柬) 1권은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발굴된 「송정사의」는 1801년(순조 원년)에 일어난 기독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으로 정약전이 지금의 전남 신안군 우이도(牛耳島)라는 섬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인 1804년 저술한 것이다.
여기서 정약전은 소나무 벌채 금지정책인 송금(松禁)이 잘못됐음을 설파하면서 그 권한이 수영 등의 지방관이 관할함으로써 그들의 탐학이 백성의 불만과 원성을 초래하고 있으므로 지방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정약전은 송금이 실현 불가능하므로 금지 정책이 아니라 소나무 식목을 권장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안 교수는 정약전의 송금에 대한 관심은 유배 이전에 이미 표출되고 있으며 특히 유배생활중에 송금으로 백성들이 엄청난 수탈을 당하고 있음을 직접 목격한 것이 이 저술을 남기게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왕조가 그 용도가 긴요한 소나무 육성을 중시한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으나, 이를 위한 송금 정책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질 좋은 소나무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지방관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방편으로 악용되곤 했다.
이에 많은 곳에서 백성들이 수탈의 원인인 소나무를 마구잡이로 벌채하는 사태가 빈번했다.
따라서 이번 「송정사의」 발굴은 정약전의 새로운 자료 발굴이라는 측면 외에 송금을 고리로 한 조선후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긴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안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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