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숨n쉼]아프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

 

“내 나이는 육십, 네 나이는 삼십인데/부자간의 깊은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아직도 한적한 절에 책 읽으러 간 것 같은데/한 줌 흙이 어찌하여 네 눈 속에 있단 말이냐.” 이 시는 영조 때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문정공 이덕수 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서른 살 아들을 떠나보낸 심정을 ‘죽은 아이의 묘를 돌아보면서’라는 시에서 이처럼 표현했다. 시인은 애절한 슬픔을 육십 세의 삶에 고스란히 담겼다. 옛 선비들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애통함을 이렇게 시로 담았다. 이를 ‘곡자시(哭子詩)’라고 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 부모가 살아서 자식의 죽음을 보는 것만큼 ‘참혹한 근심’, 즉 ‘참척(慘慽)’이라 한다. 동서고금에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누구라도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후세에 지나친 행동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는 아들을 잃고 눈물을 계속 흘리다 심지어는 눈이 멀었다. 이순신 장군이 자식 죽음 앞에서 하늘을 원망하면서 통곡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현에 습격한 왜군에 항쟁하다 셋째 아들 면이 나이 스물에 전사한 것이다. ‘난중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고통은 이제 그만

온 나라가 지극히 자식을 잃은 한 마음으로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이 때문에 즐겨보던 뉴스가 지극히 밉상이 되어버렸다. 선체 수색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실종자 수가 사망자 수로 바뀌어야 가는 것을 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올 1학기에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학교는 모두 일정이 취소되었다. 학기 초부터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 있던 철부지 막내 딸아이도 안쓰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무책임과 방임이 사고를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마치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되어버렸다. 수학여행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카톡 메시지들을 보면서 아직 어딘가에 우리 딸들이, 우리 아들들이 재잘대고 있을 것만 같다. 여행 중에 길을 잃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여행을 하다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들을 더 챙겨주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처음부터 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길을 잃지 않았을 거라고 다그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길을 잃지 않으려면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된다고 가르치는 어른들이 부끄럽다. 우리 아이들은 어리석은 어른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호’를 바다 속에 묻어둔 채 육지에서의 ‘세월’은 무심히도 흘러간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보다 더 간절한 것은 이젠 모두가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는 무능한 어른의 탄식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