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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속보’보다 ‘책임’ 우선돼야

 

꼭 열흘 전이다. 아침 편집회의를 마치자 안산지역 기자로부터 정보보고가 떴다. 대형 사고란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을 태운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 중에 있다는 거다. 현지의 급박한 상황을, 통신사는 속보 형태로, 방송사는 생중계로 보도하고 있었다. 이어 ‘전원 구출’이란 자막이 떴다. 최초 여객선이 기운 상태로 보아 ‘그렇지, 좌초인데’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안도였다. 하지만, 안도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걱정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할 거란, 여객선 규모로 보아 그리 빨리 침몰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언론의 생명인 정보보고는 계속 됐다. 기자는 조심스럽다고 운을 떼며, 한 여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단원고 학부모들이 사고 현장인 진도로 떠난다는 내용과 함께, 민감한 사안이라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채 사실 확인 과정에 있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접한 현지 장면과 달리 불길함이 엄습한다. 실시간 속보를 검색하면서는 점차 우려가 현실로 이어져서다. <속보> 승객 1명 사망, <속보> 승객 2명 사망…. 전원 구출했다던 2시간 전 기사는 안타깝게도 오보였다. 방송을 보고 내린 나의 판단 역시 안타깝게도 오판이었다.

몇 해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논설·해설위원과 여론매체부장이 대상으로, ‘한국 신문 오피니언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다. 한데 속내는 속보 경쟁이었다.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하는 방송과 인터넷으로 인해 신문이 갖고 있던 속보성을 상당부분 상실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독자층이 신문에서 자연스레 방송과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고, 매체의 특성상 속보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오피니언면을 활성화하자는 게 그날의 결론이다.

언론에는 정확성, 신뢰성, 책임성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또 있다. 속보성이다. 새로운 뉴스를 빠르게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니 등한시 할 수 없는 요소다. 세미나 취지가 속보에 대처하기 위한 것처럼 신문(新聞)을 구문(舊聞)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 신뢰도를 현저히 추락시킬 수 있는 오보는 여기서 시작된다. 팩트(사실)가 정확해야 하는데, 현장이나 취재원 접근이 어려울 경우 보도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승객 ‘전원 구출’ 오보도 마찬가지다. 인사기사에서 이름, 통계기사에서 숫자가 잘못 표기되면 오보인 것처럼. 하물며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세월호 관련 오보는 유가족 모두에게 또 한 번의 정신적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세월호 보도와 관련, 국민적 불신이 쏟아지고 있다. 왜곡된 속보경쟁, 부정확한 내용 전달, 무례한 취재행태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자 한국기자협회가 보도 가이드라인 10개항을 내놓았다. 신속성보다 정확성, 재난구조기관 공식 발표 자료 인용, 유가족 입장 배려, 생존 학생 인터뷰 엄격 제한, 오보 시 신속한 정정과 사과, 무분별한 영상·사진 사용 자제, 유언비어 확산 방지 등이다. 그제(23일)는 재난보도 준칙 제정 방안 토론회도 개최했다. 아쉽게도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 부정확한 보도를 일삼아 실종자나 유가족에게 더 큰 아픔을 주고 있다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만 확인한 채 끝났다.

국민에게는 알권리가 있다. 맞다.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 알권리는 국민에게 꼭 필요한 유용한 정보이지, 무리한 속보 경쟁으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정보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천안함 폭침 때도 제기됐던 ‘재난·재해 가이드라인’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계제에 제언한다. 언론 본연의 임무인 ‘책무성’ 강화 말이다. 금과옥조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속빈강정에 불과하다.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상응하는 규제 조치를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속보’보다 ‘책임’을 강조한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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