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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그래도 우리가 희망적인 이유

 

긴 겨울을 끝내고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가장 아름다운 철에 하도 기가 막혀서 말조차 나오지 않는 비극을 온 나라가 겪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 세계를 상대로 당당하게 외친 대한민국은 어디 가고, 후진국에서조차 있을 것 같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 앞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보고 있자니 부끄럽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지난 반세기 경제발전과 민주화란 두 바퀴를 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안전 불감증이야 오래 전부터 나온 얘기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여객선 사고도 드물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는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갓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물론 급격한 발전을 이루다보니 나라에 허술한 곳이 많아서 국민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힘 있는 분들이야 걱정이 없겠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나라에 기대지 말고 내 힘으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는 눈치야 일찌감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기다. 육지에서 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커다란 배가 기울어졌는데, 분단 상태의 준전시국가에서 경찰과 군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일은 무엇이며, 속수무책으로 차가운 바닷물에 배가 잠겨가는 가운데 그 어린애들을 내팽개치고 저희만 살겠다고 기어 나오는 괴물들은 또 무엇인가? 애타는 부모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 하고, 허튼 정보만 되풀이하여 나라에 대한 불신을 키운 관료들의 무능도 놀랍고, 무능한 그들이 퇴임 후에 온갖 유관단체나 기업의 로비스트로 다시 활동하며 거대한 부패 고리를 이룬다는 데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최단 시간에 경제 강소국으로 키웠다고 입만 열면 자랑질을 한 기성세대와 관련된 내용은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은 달랐다. 자기 살 궁리만 한 어른들의 안내방송을 끝까지 믿고 따랐으며, 질서정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선생님의 안부를 물었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다. 심지어 고(故)양온유 학생은 갑판으로 나왔다가 안에 갇혀 있는 친구를 두고 갈 수 없다며 다시 선실로 돌아가 친구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젊은 교수들과 박지영 승무원은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대피시키는 본분을 다하다가 짧은 생을 마쳤다. 이처럼 학생과 젊은 사람들이 이번 사고에서 보여준 행동은 어른들도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성숙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기성세대인 우리가 그동안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무엇이었는가? 1등을 해야 한다는 것, 친구를 이기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너 한 몸의 안녕과 성공에 집중하라는 것 등등이 아니었나. 그 한편에서 젊은 세대를 향해 부족함이 없이 자란 탓에 참을성 없고, 이기적이며,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기적인 본성을 아낌없이 보여준 주역은 젊은 세대에게 그런 지적질을 해대던 바로 우리 기성세대였다. 어른들이 인간이 되기는커녕 생존을 위해 오만과 무지의 괴물이 되어가는 사이 젊은이들은 저토록 따듯하며 의연하고 성숙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비극적 사고의 한복판에서도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가 이 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우리가 할 일은 젊은 세대의 이 귀한 덕성이 기성세대의 어두운 윤리와 처세술에 물들지 않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도록 격려하고 지켜보는 일이다. 그들이 보여준 성숙한 싹이 꺾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고 가꾸는 일인 것이다.

그대 어린 스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이름과 아름다운 행동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린 넋들이여! 부디 아름다운 나라에서 따듯하고 행복하게 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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