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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안녕하세요’가 너무 싫었다.

좀 더 멋있는 인사도 많을 텐데. 밤새 안녕이라니. 그렇게 초·중·고등학교를 보냈다. 참 좋은 세월이었다. 새벽종이 울리면 빗자루를 들고 골목골목을 청소했다. 그래야만 했다. 방학이면 잔디 씨를 모았다. 가을에는 퇴비도 리어카에 실었다. 부국강병은 초등학생의 손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잔디가, 퇴비가, 리어카가 이룬 경제력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종합편성방송 가운데 하나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보면서였다. 탈북 미인들이 그 고운 손으로 50대인 우리가 했던 그 일을 했단다. 아, 어쩌면 더 심했다. 그런데도 지금은 밝은 얼굴이다, 다행이다. 아, 채변봉투도 있었다. 쥐꼬리도 있었다. 그런 세월이었다. 한때는 쌀밥만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라고 했다. 하여, 밀가루 빵을 배급받았다. 그래야 서양 아이들처럼 키도 크고 힘도 세진다고 했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미군(美軍)부대 옆에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미루꾸’나 ‘쪼꼬렛뜨’를 쉽게 먹었다. ‘캠프 어쩌고’였다. 정말 ‘안녕’한 시절이었다.

‘안녕’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나중에 알았다. 어른들의 표현을 빌리면 ‘대구빡’이 큰 다음이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대는 안녕한가, 가 소중한 시절을 그때나 지금이나 지나고 있다.

지난 밤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와 술잔을 기울였다. 참 간만이었다. 친구가 그랬다. ‘안녕’을 묻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한때는 시(詩)가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는데, 또 편지가 그랬고 엽서가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언어인 시(詩)가 사라진 시대라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살아야할 이유가 있으니까. 그래서 신(神)이 인간을 세상에 내려 보낸 것이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부질없었다. 구구절절 그 친구의 말이 옳았고 어느 순간 ‘지구의 행복을 위해 인류는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돼 있었다. 그 가운데 나도 서 있었다.

이민(移民)을 이야기 했다.

고삐리(?) 아들을 둔 친구는 마음이 더 저미었다. 자식 없는 내 가슴에도 푸른 멍이 짙어 가는데, 그 친구야 오죽했을까. 이 땅에 어떤 희망이 있어 아이들을 머물게 할 것인가, 말하며 울었다. 고개만 끄떡일 뿐, 이민을 막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세상’을 우리는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있어 이 시대를 설명할 것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가슴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나라. 부(富)와 빈(貧)이 서로 부끄럽지 않게 공생(共生)하는 마을.

헛된 꿈이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넨 지, 이미 오래. 조직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지고, 사라진다. 밥숟가락을 들었던 것보다 더 많이 건넨 안녕을 삼켜버린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희망이라 부를까. 안부를 전하던 편지와 시와 소설이 사라진 시대. 그래서 인(人)과 문(文)이 실종된 땅에서 인문학(人文學)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구태(舊態)?

세월호에 잠겨 ‘불귀의 객’(不歸之客)이 된 아이들의 손가락이 골절됐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종북(從北)으로 치부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시대.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어 살아보라고 권할 것인가.

박철화 교수는 ‘그래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하여 미래가 있다’고 했지만 졸렬한 나는 자신이 없다.

문신(文身)처럼 가슴에 새겨져 있는 체 게바라의 시 한 구절로 마음을 달래야겠다. 안녕이여, 부디 안녕하시라.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들처럼/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나 적막하구나/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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