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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형편과 능력이 따라주질 않으니…

 

얼마 전 서점에서 신간을 뒤적이다 최근 발간된 ‘영국소설을 통해 본 영국신사도의 명암’(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著)이라는 책을 접했다. 그리고 내용이 흥미로워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읽었다. 그중에서 특히 흥미를 끈 것은 오늘날 ‘예의 바른 사람’, 혹은 ‘도리를 아는 사람’의 대명사격이 된 ‘신사’라는 말이 영국의 특정계층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었다. 그 문화의 한 예로 사교계에서 남녀가 벌이는 구애의 법도를 설명해 놓았는데 대충 이렇다. 18∼19세기 영국 ‘신사 사회’에서 예의 없는 거절은 상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춤은 반드시 남성이 요청을 하고 여성이 수락을 한다’, ‘적당히 핑계를 댄 여성이 만일 다른 상대와 춤을 추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여자와 사귀던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발을 딱 끊거나 다른 여자에게 구애를 하면 부도덕한 남성으로 비난을 받았다’ 등등. 당시의 소설은 이런 ‘신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얼마나 예의범절을 잘 지키며 인간과 사회를 배려하는지를 검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사의 도리’가 남녀 간의 매너가 아닌 ‘인간의 도리’와도 같고 타인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인격적 교류의 중심임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신사적 행동이란 단순한 인정이 아니고 절제, 배려, 교양 등을 나타내는 척도였음도 사례를 통해 강조해 많은 수긍이 갔다.

그날 서점을 나오며 비록 신사는 아니지만 ‘도리(道理)를 다하며 산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생각했다. 우리는 도리가 있는 사람을 ‘경우’가 밝은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도리가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거론치 않아도 ‘사리’에 맞게 일을 할 줄 안다는 뜻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만큼 실천을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노릇을 못한다고 생각할 땐 먼저 자괴감이 드는 것이 우리네 심정이다. 물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인사치레로 전말을 호도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구실’을 못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형편이 안 돼서 그렇고, 이것저것 하고는 싶지만 능력이 따라주질 않아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세상 살아가는 마음은 더욱 팍팍해지고 짜증부터 앞서 도리는커녕 민폐(民弊) 끼치기 일쑤다.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를 보면 더욱 실감난다. 부모 모시는 일부터 작게는 집안 대소사 챙기는 일까지 부모와 자식, 친·인척간 제 노릇을 못하는 바람에 서로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직장도 마찬가지다. 상사와 부하가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서로 불신하고 실망에 빠지는 일도 허다하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도리가 있을 텐데 일이 돼가는 형편이나 주어진 환경이 녹록치 않아 이루지 못했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의 이치를 잘 파악하고 해야 할 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구별해 마땅히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작은 도리의 실천마저 이처럼 쉽지 않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오히려 더 많은 도리를 원하고 또 필요로 하고 있다. 해서 새삼 공자의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말도 생각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지금처럼 절박한 때는 없어서다. 앞으로 있을 6·4 지방선거에서도 유효한 말이다. 특히 유권자들에겐 의미가 크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벼슬길에 나가는 세상 사람들을 보니 마치 개미떼가 양고기 누린내를 좋아하여 몰려드는 것 같았다. 벼슬을 얻어도 걱정, 잃어도 걱정하는 모습이 말씨나 표정에 드러나기까지 하니 참으로 비루해 보였다”고. 이런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기지 않는 것도 유권자 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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