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준성칼럼]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지난주 목요일, 모임에 나갔다. 이해 관계없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겐 깍듯함이 더한 모임이어서 자주 나가는 편이다. 그날도 화기애애한 가운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식사가 끝나갈 무렵, 옆에 앉은 선배가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내밀며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웨딩사진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뜸 ‘아니 청첩도 안 하고 아들 장가보내셨단 말입니까? 섭섭합니다’며 정색을 했다. 그러자 선배는 빙그레 웃으며 자세히 보라고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선배였다. 턱시도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선배 옆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밝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흠칫 놀라는 나에게 ‘정 실장도 한번 찍어봐, 기분이 새롭고 부부간의 정 또한 신혼으로 간 듯해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며 ‘자랑 반 권유 반’으로 사진 찍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지난 7일, 자신이 다니는 용인 모 교회에서 어버이날 이벤트로 신도 몇 쌍을 선정, 자녀와 친지들을 초청해 앙코르 결혼식을 올려주었다고 한다. 선배는 그날 행사에 안내를 맡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날 느낀 감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60이 넘은 신랑들과 신부들이 수줍어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멋진 신랑으로, 아름다운 신부로 바뀐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 부러워 매료되기도 했다. 행사를 마치면서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생겼다. 등등.

선배는 다음날, 어버이날이라 찾아온 자식들에게 가족사진 찍기를 제안하면서 더불어 ‘리마인드웨딩사진’도 찍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큰딸의 소개로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거창한(?)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비록 앙코르결혼식은 치르지 않은 웨딩촬영이었지만 진짜 신나고 설렜다고 했다. 특히 처음엔 한창 들떠 부산했던 아내도 흰 드레스를 입자 나이답지 않게 수줍어하며 다소곳하게 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신부 같아 더욱 그랬다고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더라’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등등. 마치 촬영 당일 같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던 중 가끔 나에게 ‘리마인드 웨딩’을 조르던 아내 생각이 문득 났다. 정작 나는 생각지도 않는데 ‘뭘 입을까?’ ‘어디 가서 어떻게 찍을까?’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펴는 아내를 보며 시큰둥도 하지 않았던 나의 무관심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부러움도 들었다. 항상 계획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며 아내 말이라면 ‘이 핑계, 저 핑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동조치 않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끔 말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이처럼 부부란 특히 남과 달라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귀담아 들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해서 가끔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는커녕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기 일쑤다. 이럴 때 충돌은 불가피하다. 젊은 부부나 중년의 부부나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말만 하면 싸우니까 차라리 말 안 하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도 남편들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지적할라치면 대화는 제쳐두고 ‘버럭’ 목소리부터 높여 일단 제압하고 나서 잘못을 정당화시키려는 얄팍한 수법을 쓰기 일쑤다. 물론 모든 부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부의 경우가 비슷하다. 이런 면에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다른 집은 별거 있는 줄 알아?’라며 한술 더 떠 거드는 주위의 말에 위안을 삼아서 그런지 점점 더 심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화평과 화목, 사랑의 시를 쓰며 살아가는 부부들도 얼마든지 있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아내, 남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부부의 날’이다. 이들을 부러워하며 꽃이라도 몇 송이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건네면서 이렇게 말해볼까?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