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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US에어웨이즈 1549편 항공기가 2009년 1월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뒤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하여 양쪽 날개의 엔진이 고장 났다. 저고도에서 동력도 없이 공항으로 귀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체슬리 셀렌버거 기장은 침착하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불시착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허드슨 강위로 비행기를 착륙시킨 것이다. 155명의 탑승객은 기내방송과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단 2분 만에 양 날개 위로 탈출하였다. 당시 기온은 영하 8도였으며 수온도 1.5도로 차가웠다. 자칫 물에 빠지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생자 한 명 없이 전원 구조되었다. 구조되는 데 소요된 시간은 23분이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었다.

지난 5월21일 9·11테러로 숨진 2천977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박물관이 뉴욕 맨해튼에 공식 오픈되었다. 9·11테러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하며 아비규환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재건의 상징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돕고 싶었다. 하지만 구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는 한 소방관의 말이 미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절대 잊지 말자는 미국의 다짐이었다.

9·11테러 당시 경찰과 구조대원들의 통신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뉴욕 무역센터가 붕괴될 때 경찰들은 제때 대피했지만 소방 구조대원들은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려 유명을 달리했다. 이러한 시스템적 결함을 딛고 안보와 재난을 통합하여 지휘하는 국토안보부가 생겨났다.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잘 대처해 나가자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안전과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드높았다. 그 결과 허드슨 강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리라. 9·11테러 이후 안보와 안전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의 의식이 불시착한 여객기 승객들을 안전하게 구조한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안보실에서는 재난구조는 안보실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결과가 김장수 안보실장 등 국가안보 라인의 전격 경질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민주국가의 기본은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시해야 된다. 그런데도 일반 재난사고와 안보적 재난을 분리하여 생각했던 발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유관부서를 독려했어야 했다. 네 업무와 내 업무를 구분함으로써 소임을 다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는가. 유족들은 한없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대통령은 막중한 책임의 눈물을 흘렸다.

안보와 안전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도 잘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선조 23년(1590년) 조선 조정은 일본에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다. 이듬해 귀국한 정사 황윤길(黃允吉, 서인)은 왜병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사 김성일(金誠一, 동인)은 왜군의 침략 징후를 보았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안전을 해친 전형적인 사례다. 1592년 조선은 왜군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의 생명과 국토가 유린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린 조선은 그로부터 300여년 만에 또다시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병합되는 수모를 겪었다.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은 망각의 결과였다.

망각의 DNA가 우리 사회에 없어지지 않는 한, 그때 세월호에 타지 않아 현재 살아 있을 뿐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직행열차에 언제 발을 딛고 올라서게 될지 모른다. 살아도 죽은 거나 진배없다. 1990년대 서해 페리호의 참상과 당시의 숱한 재난사고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도 10년 20년이 지난 뒤 추억의 저편에 묻혀버린다면, 유사한 재난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위에 머물 것이다. “미안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아다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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